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다지만 따뜻한 윗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투자한 외국자본도 그중의 하나라 할 만하다. 국내 주식시장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확보한 외국인투자가가 지난해 국내기업들의 주식거래를 통해 챙긴 시세차익만도 30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삼성전자ㆍ국민은행 등 우량기업에서 받는 배당금도 3조원을 넘어 국내 증시는 말 그대로 `외국인의 잔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93년 국내 자본시장이 개방된 후 주식시장에서 외국자본이 올린 수익은 100조원이 넘는다는 계산도 나와 있다. 우리 경제가 어렵다지만 외국자본 입장에서는 황금시장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외국자본이 누리는 고수익은 우리 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외국인투자가가 없는 주식시장은 상상하기 어렵다. 막대한 자본력이 요구되는 은행의 민영화에서부터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에 이르기까지 우리 경제의 많은 부분이 외국자본 없이는 굴러갈 수 없는 구조가 돼버렸다. 이미 3개 시중은행이 이미 외국자본에 넘어갔고 외환위기 이후 무더기로 쏟아진 부실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도 외국자본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세상만사 다 그렇듯이 지나치면 반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지분이 40%를 넘어서면서 새로운 불안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시장의 핵심인 은행이 줄줄이 외국자본에 넘어가면서 금융주권 상실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단순한 헐값 시비 차원이 아니라 금융주권 상실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외국자본의 긍정적인 역할 뒤에 가려져 있는 역기능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 가령 힘겹게 떠받치고 있는 환율이 삐긋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자본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도 한가지 예이다. 단기수익에 급급한 외국인투자가들이 배당압력을 높힐 경우 기업들은 새로운 투자는 뒷전인 채 현상유지에 급급하다 경쟁력이 떨어져 낙오자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자본의 회임기간이 길지만 경제성장 잠재력 확충에 중요한 기업대출은 기피하고 개인과 가계대출에만 열을 올리는 은행들만 있어도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세계화ㆍ개방화 시대에 국내자본과 외국자본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금융산업을 외국자본이 거의 지배하고 있는 중남미국가들의 경제를 보면 경제의 혈관이나 다름없는 금융산업이 단기수익에 급급한 외국자본에 의해 지배돼도 문제가 안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외국자본 이외 달리 방도가 없었던 외환위기 직후와 비교하면 우리 경제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외환보유고도 충분히 쌓였고 국내 기업들의 재무구조와 자금사정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시중에 떠돌고 있는 부동자금도 수백조원에 이른다. 외환위기 직후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마련된 긴급 처방전을 더 이상 성역시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제 구조조정을 넘어 외국자본이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는 성장의 과실을 나눠갖는 일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사모펀드 관련 제도를 정비하는 일은 그래서 시급한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국내자본은 산업자본이라는 이유로 손발을 묶어놓은 역차별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외국인투자가들이 지칠 줄 모르고 국내 우량기업들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보면 연기금의 주식투자 활성화 등을 통해 주식투자를 늘리는 것만큼 손쉽게 국부를 키우는 방법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땀 흘려 일군 경제적 과실의 몫을 키우려면 금융주권부터 바로서야 할 것 같다.
<논설위원(경영博) srpar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