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리포트] 맨해튼 아파트가 안전자산? 유로존 위기 덕에 투자 1번지 부상

최고의 자산도피처로 각광… 유럽·中 투자자 대거 몰려
공급 줄면서 매매가 치솟아… 침실 2개짜리가 120만달러…
임대료도 사상 최고치 근접



한인 건축가 최모씨(45)는 최근 자신의 사무실 근처로 이사하기 위해 뉴욕 맨해튼 남쪽 소호 인근의 아파트 임대를 알아보다 포기하고 말았다. 침실 2개짜리 아파트의 렌트료가 월 4,500~5,000달러에 달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비해 500달러 이상 오른 것. 그는 "맨해튼 아파트 임대료가 올랐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위기로 인해 글로벌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지만, 뉴욕의 부동산 시장은 꾸준한 회복세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위기로부터 자산을 지키려는 유럽이나 중국 등 해외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치솟는 임대료에 임대에서 매매로 전환하는 실수요자들이 가세하면서 맨해튼은 세계 주택투자의 1번지로 부상하고 있다. 더디고 불규칙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전체 미국 주택시장과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모습이다.

◇"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다"=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밀러 새뮤얼에 따르면 맨해튼의 아파트 중간 가격은 침실 한 칸짜리가 62만5,000달러, 침실 2칸짜리는 120만 달러에 달한다. 미국 한 가정이 거주하는 싱글 하우스의 중간 가격이 15만8,000달러인 점을 감안할 때 뉴욕의 아파트 가격이 얼마나 비싼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맨해튼 아파트의 임대료는 갈수록 치솟고 있다. 밀러 새뮤얼은 현재 맨해튼 아파트의 구매비용과 연 임대료의 비율은 20.8배로 지난 2006년 이후 6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비율은 지난 2008년에는 26.7배로 최고를 기록했었다. 가격 격차가 줄어든다는 것은 임대료의 인상이 그 만큼 더 가팔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맨해튼 아파트의 평균 임대료는 월 3,100달러(연간 3만7,200달러)로 전년에 비해 7.1% 상승했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 2008년 2ㆍ4분기의 월 3,265달러에 바짝 다가섰다. 또 다른 컨설팅업체인 액시오메트릭스에 따르면 앞으로 1년동안 맨해튼의 주택 임대료는 6.7%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올해말까지 예정된 아파트의 신규공급이 2,486가구로 지난해에 비해 단 0.3%만 증가할 것으로 분석돼 임대료를 밀어 올리는 요인이다. 이러한 임대료의 상승은 실수요자들을 임대에서 매매로 돌아서게 만들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체인 루텐버그의 에이전트는 웨이민탕씨는 "사람들이 더 이상 맨해튼의 부동산가격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며 "매매수요가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상최저 수준인 모기지 금리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계약금(downpayment)을 높이는 등 과거보다 한층 까다로운 대출 조건을 내걸고 있다는 점은 수요확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자산도피처로 각광= 맨해튼 북동쪽에서 활동하고 있는 부동산 에이전트 다엘리다 제이콥스씨는 최근 스페인 투자자로부터 1,000만~2,000만달러의 고급주택의 매물을 찾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투자자는 스페인의 경제위기가 심화되자,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맨해튼 부동산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부동산 마케팅 회사인 맥 컴퍼니 에릭 워크맨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자산을 안전하게 보전할 수 있는 곳이나 헐 값에 살 수 있는 부동산을 찾고 있는 데 미국 시장이 그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전미부동산중개협회(NAR)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지난 3월까지 일년 동안 미국에서 해외투자자들이 사들인 주거용 부동산은 825억달러 규모로 전체 거래물량 9,280억달러의 8.9%에 해당한다. 이는 전년의 664억달러에 비해 24% 늘어난 것. 주거용 부동산을 사들이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현금으로 거래를 한다는 점은 또 다른 특징이다.

미국 부동산을 사들이고 있는 투자자들의 국적은 주로 중국, 멕시코, 인디아 그리고 영국 등이다. 중국인들의 경우 한해 동안 미국에서 73억 달러어치의 부동산을 사들였다. 이는 전년에 비해 23% 늘어났다. 외국인들은 주로 뉴욕,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텍사스, 애리조나 등에서 부동산 매입이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중국인 투자자들은 미미했지만, 이들은 이제 뉴욕의 최고급 주택시장에서 가장 큰 손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뉴욕의 부동산 업체들은 중국어에 능통한 중개인 고용을 늘리고 있으며 중국 부동산 중개업체와 제휴와 합병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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