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장준일(15ㆍ가명)군은 가까운 노인요양원에서 봉사를 하려고 했지만 학교에서는 봉사를 인정해줄 수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다.
사설기관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아버지 장주환(46ㆍ가명)씨는 "단지 사설기관이라서 봉사활동 시간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탁상행정 아니냐"며 "대체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생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봉사활동 인정 기준이 당초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시도교육청과 학교가 봉사활동의 내용보다 해당 시설이 공공기관인지 사설기관인지를 기준으로 봉사시간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준 탓에 봉사활동 내용이 취지에 부합하더라도 사설기관에서 했을 경우 봉사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 반면 공공기관에서 하면 허울뿐인 활동도 봉사시간으로 인정돼 학생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봉사활동 시간이 인정되는 일부 기관에서는 인터넷 댓글을 달거나 동영상 시청만 해도 봉사시간을 주고 있다. 서울특별시사회복지협의회 사이트에는 60분짜리 동영상을 다 본 후 문제를 풀어 5개 중 4개를 맞추면 봉사시간 1시간을 인정한다. 선플국민운동본부에서 진행하는 선플 달기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선플누리단이라는 동아리에 가입하고 댓글 20개를 달면 1주일에 최대 1시간을 인정해준다.
학교 안에서도 형식적인 봉사 시간 채우기는 이어진다. 일부 학교는 예비소집일에 출석만해도 봉사시간을 준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된다는 김모(17)군은 "귀찮아서 예비소집에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선생님이 봉사 시간을 준다고 해서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봉사활동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존재한다.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두고 있는 학부모 배모(49)씨는 봉사활동에 대해 "솔직히 학교 방침이라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며 "그 시간에 학습 보충이든 아이가 원하는 것이든 하게 해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1 자녀를 둔 박모(51)씨는 "방학 때 애들이 봉사할 수 있는 기관이 정해져 있어 일일이 따져가며 해야 하는 것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설립 주체와 상관없이 해당 활동이 봉사활동의 취지에 맞는다면 교육감ㆍ교육장ㆍ학교장이 인정하는 경우에 한해 봉사 시간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교육청과 학교는 사설기관에서 한 봉사도 봉사 시간으로 인정할 경우 봉사를 하지 않고 가짜로 확인증을 끊어오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서울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 교감은 "어떤 곳이든 사설기관에서 한 봉사는 인정하지 않는다"며 "어디에서 하느냐보다 학생들이 봉사를 통해 깨닫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인정 기관을 규제하는데도 가짜로 봉사시간 확인증을 끊어오는 학생이 있어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