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씨는 가계부를 쓴지 한달만에 질겁을 하고 말았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지출이 너무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정보통신 비용이다.崔씨가 작성한 가계부에 따르면 崔씨 부부와 자녀 2명이 정보통신 수단을 활용하기 위해 9월 한달간 지출한 비용은 42만5,000원. 「통신계수」(정보통신비용/월수입X100)가 14.1로 엥겔계수에 육박했다.
4~5년 전만 해도 金씨 가정이 정보통신 수단을 쓰기 위해 지출했던 비용은 고작 5~6만원 수준. IMF 이후 수입이 25%나 줄었는데 엉뚱한 곳에서 생각하지도 못한 큰 지출이 발생하니 살림 꾸리기가 만만치 않은 것은 당연하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정보화 물결이 시대의 대세로 떠올랐다. 그러나 崔씨 가족의 경우처럼 분에 넘치는 「통신 과소비」 현상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98년 국내 가정의 단순 통신비용은 4만4,800원. 주식비인 쌀값 3만2,000원을 이미 넘어섰다. 여기에 집계되지 않은 갖가지 정보통신 비용을 합치면 통신계수가 먹거리 비용인 엥겔계수를 넘어설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물론 통신계수가 높을수록 문화수준이 향상됐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먹고 자는데 그치지 않고 첨단문명을 마음껏 향유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진국일수록 통신계수는 높은 편이다. 또 통신계수가 높을수록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전도(前途)도 밝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부(富)의 수준에 아랑곳하지 않고, 과열된 정보화 붐에 「가랑이가 찢어져도」 동참한다는 태도가 늘 문제다. 「과소비」는 이제 보편적인 통신 이용 풍속이 돼버렸다. 너나 없이 과소비에 젖어 있다 보니 그게 과소비인지도 모른채 지내고 있다.
공중전화 부스를 코 앞에 두고, 심지어 부스 안에서 휴대폰을 쓰는 사람은 요즘 흔히 볼 수 있다. 또 2~3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무실에서마저 휴대폰을 거는 사람도 적지 않다.
휴대폰을 자주 바꾸는 것도 과소비의 표본. 현재 휴대폰 가입자는 2,100만여명이 넘는다. 지금까지 판매된 휴대폰은 총 5,000만여대. 이 가운데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구식 아날로그 휴대폰과 고장난 휴대폰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1,500만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적어도 1,400만대의 휴대폰이 그냥 장롱 속에서 잠들고 있는 셈이다. 1대당 40만원만 잡아도 5조6,000억원. 50억달러에 가깝다. 98년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는 449조5,000억원. 기껏 장롱 속에 쳐박아 둘 휴대폰을 사기 위해 우리 국민은 한해 GDP의 1.25%를 지불했다.
이로 인한 업체들의 손실도 어마어마하다. 정보통신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동전화회사가 단말기 보조금으로 쓴 금액은 총 2조3,000여억원. 심지어 한 회사는 매출액의 110%를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이 정도면 도저히 정상적인 판매와 소비 행위라고 볼 수 없다.
인터넷 분야도 마찬가지다. 회사원 이진성(28)씨의 경우 인터넷 ID를 무려 18개나 갖고 있다. 업체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무료 ID를 주는 곳이 속출함에 따라 별 쓸모도 없는 ID를 수십개씩 갖고 있는 네티즌이 수두룩한 실정이다. 버려지거나 개설되지 않은 홈페이지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업체 한 관계자는 『규모를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과당경쟁으로 인한 손실과 기회비용까지 합치면 능히 수천억원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전화 정산 적자가 600억원을 넘은 것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이는 외국에서 걸려온 전화보다 해외에 건 전화가 많다는 뜻. 우리가 외국인에 비해 쓸데없이 많은 전화를 한다는 의미다. 또 한번 이용에 보통 1,000원씩 하는 「700」 유료전화가 수백개나 성행하고 있는 것도 과소비의 예다.
소비가 미덕인지 아니면 죄악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분수」다. 분수에 넘친 과소비는 항상 그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이균성기자GSLEE@SED.CO.KR
이진우기자MALLIA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