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서초구 반포4동 서래마을에 6,000여평 규모의 ‘몽마르뜨공원’이 개장됐다. 서래마을은 주한 프랑스인의 약 40%인 560여명이 모여 살고 있는 대표적인 프랑스촌이며 공원 개장은 한ㆍ불 수교 12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였다.
올해는 우리나라와 프랑스가 외교 관계를 수립한 지 120주년이 되는 해다. 오랫동안 쇄국의 빗장을 지르고 문호를 개방하지 않던 조선왕조가 1886년에 서방 국가로는 처음으로 프랑스와 수호조약을 체결했던 것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각종 문화행사가 거의 1년 내내 펼쳐진다. 지난 3월11일부터 16일까지 대전 예술의 전당과 경기 고양 어울림극장에서 리옹국립오페라발레단 내한 공연이 있었다.
오는 4월11일부터 5월9일까지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프랑스 뮤지컬 ‘십계’가 공연되고 5월3일부터 8월27일까지는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조르주 루오전’이, 5월20일부터 6월6일까지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피카소의 작품 60여점이 공개되는 ‘피카소의 사람들전’이 개최된다. 또 10월에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밀레ㆍ들라크루아ㆍ코로ㆍ앵그르ㆍ바토 등 거장들의 작품 70여점이 소개되는 루브르박물관 걸작선 ‘17~19세기 서양화에 나타난 풍경’이 개최된다.
또한 1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성곡미술관에서는 ‘알랭 플래세르 사진전’이, 11월9일부터 내년 2월4일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 ‘장 뒤뷔페 회고전’이 열린다. 8월27일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정명훈의 지휘로 ‘한ㆍ불 수교 120주년 기념음악회’가 열린다. 양국 예술가들이 공동 참여하는 공연도 있다. 10월31일 서울국립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결혼’과 11월4일과 5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무용 ‘행주산성’ 등이다.
프랑스인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프랑스는 문화 대국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나라다. 뜻 깊은 한ㆍ불 수교 120주년을 맞아 양국이 다양하고 다채로운 문화예술 행사를 통해 우호를 더욱 다지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아직도 프랑스로부터 받아야 할 문화적 빚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바로 외규장각 도서 환수다.
한ㆍ불 수교 20년 전인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 갑곶진에 상륙한 프랑스군 600여명이 외규장각에서 191종 297책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약탈해갔다. 비록 병인양요는 140년 전에 있었던 과거사라 하더라도 야만적으로 강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은 하루빨리 돌려줘야 ‘문화 대국’의 위상에 맞는 마땅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140년이 지난 지금까지, 91년 도서반환협상이 시작된 이후 15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를 돌려주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는 것이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는 99년부터 양국이 각각 민간대표를 임명해 협상으로 타결을 모색했으나 이 또한 아직까지 별다른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01년 7월에는 우리 협상대표 한상진과 프랑스 대표 자크 살루아 사이에 ‘프랑스의 어람용 도서(御覽用圖書:왕이 보는 책)와 한국의 비어람용 복본(複本)을 상호 교환 대여하자’고 잠정 합의했으나 이것도 수용 여부를 두고 수년간 내부 진통을 겪다가 다시 정부 차원의 재협상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약탈당한 문화재를 대여 형식으로 돌려받는 것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없는데다가 학계도 대체로 부정적이기 때문이었다.
민간협상이 한계에 달했다는 판단에 따라 최근 정부는 외교통상부 내에 대사급을 팀장으로 하는 5~7명 규모의 외규장각도서반환전담협상팀을 출범시켜 프랑스와 본격적인 재협상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한다. 이제 프랑스는 등가교환(等價交換)이니 뭐니 하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접고 성실한 자세를 보이기 바란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약탈당했던 수많은 문화재를 맞교환이 아니라 40년간의 끈질긴 요구 끝에 94년에 대부분 돌려받지 않았던가. 그런데 한국에는 등가 교환을 하자니 이는 강도질한 보물을 돌려줄 수는 없고 그대신 같은 값어치의 보물과 맞바꿔 빌려주자는 소리와 다름없는 황당무계한 궤변이다.
또 한 가지, 외규장각 도서 반환도 중요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악랄하게 강탈하거나 도둑질해간 숱한 국보급 문화재의 환수에도 거국적 관심과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것이 문화주권을 되찾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