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고향은 사무치는 그리움의 대상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가난에 찌든 과거의 파편일 뿐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떠나본 적 없는 삶의 현장 그 자체다. 작가 개인이 가진 독특한 시각을 바탕으로 고향의 다양한 색채를 담아낸 전시 2편이 미술 애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수십 년 만에 찾은 고향 그린 임동식 화백의 '사유의 경치Ⅱ'=수십 년 만에 고향(충남 연기군) 인근의 공주를 찾아 화업을 이어가고 있는 임동식(68) 화백이 '사유의 경치Ⅱ'전을 갖는다. 오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다. 화백은 홍익대 회화과와 독일 국립 함부르크미술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며 대도시의 잘 나가는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까지 독일에서 보낸 10여년 동안 작가는 야외 설치와 퍼포먼스, 음향작업 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쌓아가면서 사변적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에 회의를 느꼈고 47세가 되던 해 귀향, 자연에 순응해 살아가는 주민과 생활하면서 회화의 길로 돌아왔다. 작가는 기름을 섞지 않는 유화 물감을 세필 등을 사용해 점점이 찍는 독특한 화법으로 작업하는데, 어떤 작품은 1년이 넘는 인고의 세월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법으로 그린 화백의 작품은 가볍고 맑은 느낌의 수채화 같다. 임 화백은 "유화가 가진 현재완료적인 느낌은 없지만, 캔버스 위에 물감 입자들을 하나씩 덧입히면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표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시된 20여점의 작품들을 저마다 하나씩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들이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거나(마을 밖 버드나무 아래 행복한 사람들), 개를 데리고 언덕을 오르거나(친구 정군이 권유한 바람쐬는 날), 비 내리는 숲길에 색색의 우산을 쓰고 들꽃을 감상(원골에 온 손님들)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고향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정(情)이 살포시 묻어난다.
◇연신내 날 것 그대로 드러낸 김태동의 '데이 브레이크(DAY-BREAK)'=지난해 일우사진상 전시부문 수상자인 김태동(36) 작가가 6개월간 자신이 몸담았던 공간에서 포착한 주변인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 '데이 브레이크(Day Break)'전을 연다. 12월 24일까지 일우스페이스에서다. 일우사진상은 뛰어난 재능과 열정을 지닌 사진가를 발굴해 세계적인 작가로 육성하고자 한진그룹이 지난 2009년 처음 제정한 상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부도심인 연신내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자신이 가장 익숙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 시간과 도시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전시장에 걸린 액자 속에는 밤새 친구들과 술 마시고 새벽에 귀가하는 여학생이 당돌한 눈매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붉은 벽돌의 성당 뒤편으로 위용을 뽐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자본의 거침 없는 힘을 보여주고 이곳 저곳 그을린 자국이 선명한 담장은 지나간 세월을 떠올린다. 작가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삶의 터전에서, 주변인의 눈으로 포착한 또 다른 주변인의 현재의 삶을 섬세하게 렌즈에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