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주체들이 아무리 경기의 엔진을 돌려도 호주머니는 쉽사리 채워지지 않는 경기의 ‘공회전’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수출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지만 유가급등 등으로 교역조건이 나빠져 수출로 수입할 수 있는 물량이 줄어들다 보니 구매력을 잃어버려 성장률이 높아지는데도 소득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17일 내놓은 ‘1ㆍ4분기 중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 동향’을 보면 우리나라 수출의 교역조건이 올 들어서도 빠르게 나빠지면서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지난 2004년 2ㆍ4분기부터 8분기 연속 교역조건이 악화되고 있는 셈이다. 지표에 따르면 이 기간 중 우리나라의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75.1로 사상 최저였다. 지수가 75라는 것은 2000년(100)을 기준으로 25% 악화됐다는 뜻으로 1단위 수출대금으로 수입할 수 있는 물량이 2000년의 75%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1ㆍ4분기의 순상품교역조건은 전 분기에 비해 4% 악화됐고 전년동기와 비교해도 7.6%나 나빠진 것이다. 교역조건 악화로 발생한 무역손실이 실질기준으로 지난해 무려 46조원에 달했고 올해 1ㆍ4분기에는 17조원으로 분기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 같은 ‘엇박자 성장’이 계속되면서 올해 1ㆍ4분기 성장률이 전년동기 대비 6.2%나 됐지만 국내총소득(GDI)은 고작 1.8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순상품교역조건이 내리막길을 계속 걸은 것은 수출단가는 반도체 등 IT 제품의 가격이 내려앉은 탓에 1ㆍ4분기에 1.5% 하락한 반면 수입단가는 유가급등으로 2.5%나 올랐기 때문이다. 전기전자제품의 수출단가는 2000년의 절반 미만으로 떨어진 데 반해 원유 수입단가는 전기 대비 7.8%나 급등했다. 순상품교역조건은 악화됐지만 총수출대금으로 수입할 수 있는 물량을 의미하는 소득교역조건지수는 140.7을 기록, 전년동기에 비해 4.1%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