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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김치는 그저께 밤에 박근혜 대통령이 만드셨고 쑥떡은 어젯밤 승민이가 만들었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정치권에 큰 파장을 남기며 원내대표직을 사퇴한 다음날인 9일 그의 노모가 대구광역시의 한 사찰에서 물김치와 쑥떡을 법당에 올리며 한 말이다. 유 전 원내대표의 노모인 강옥성(86) 할머니는 이날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청수사 '관음재일 정기법회'에 참석, 자택 텃밭에서 직접 키운 쑥으로 손수 만든 떡과 물김치를 올렸다. 강 할머니는 또 이를 신도들에게 나눠주면서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주위에서는 "노모께서 박 대통령과 유 전 원내대표 간 화합을 기원하는 뜻을 간접적으로 표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청수사의 한 신도는 "힘겨워할 아들 생각에 이틀간 잠을 못 이루며 밤새 부처님 전에 올릴 공양물을 차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전날 국회법 개정안 위헌 논란과 거부권 파동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당 의원총회의 권고를 수용, 원내대표직에서 중도하차하면서 "내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밝혔다. 국회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지 40일 만,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며 '배신의 정치 심판론'을 언급한 지 13일 만, 지난 2월2일 원내사령탑에 오른 지 다섯 달 만이었다.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한 강 할머니는 평소 법회 참석 때와 다름없이 대웅전에서 예불·기도 등을 봉행하고 신도들과 어울려 점심 공양을 함께 하면서 4시간가량 청수사에 머문 뒤 남구 대명동 자택으로 귀가했다. 청수사의 효민 스님은 "대를 이어 국회의원을 한 남편 유수호, 아들 유승민씨에게 강 할머니는 조용한 후원자이자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라며 "걱정과 분노조차 깊은 불심과 수행으로 승화시키면서 외풍을 견뎌온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 할머니는 남편과 자식의 지역구와 거리가 먼 청수사에서만 30년간 신도회장을 맡아 봉사해왔다"면서 "이웃에게 늘 아낌없이 베풀고 희생하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 같은 진정한 보살"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