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 친구는 자기 아들이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 채용된 사실에 늘 자부심을 가져왔다. 기회만 되면 아들의 근황을 우리에게 설명하는 것이 그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그는 어느 날 TV 뉴스를 보다가 아들을 발견했다. 기업 총수의 검찰 출두 현장에 기자들과 몸싸움을 하는 장면이었다. 이에 대한 아나운서의 따가운 비난이 공중파를 타고 전국으로 나갔음은 물론이다. 그 일 때문이었을까. 그 뒤로 그 친구의 아들 자랑이 줄어든 것처럼 느껴진다.
며칠 전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문제만 생기면 휠체어를 타고 위기를 모면하려는 한국 재벌총수들의 행태를 꼬집었다. 이들의 범법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사법부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시장경제의 원리는 개인들의 사익 추구가 전체적으로는 부의 증대와 공동체의 번영을 가져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기업행위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데 강한 거부감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 세계 두 번째 부자 워런버핏이 자기 재산의 85%를 기부하겠다는 선언이나 2003년에 마이크로소프트 사장인 빌게이츠의 아버지 윌리엄 게이츠와 조지 소로스가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성명을 낸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실지로 내가 본 많은 미국인들이 성공한 기업인들에 대해 부러움과 질시에 그치지 않고 내면에서 우러나온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지난 9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마티아 센 교수는 시장경제의 창안자라 할 수 있는 애덤 스미스가 원래 글라스고 대학의 도덕철학 교수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스미스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기심 충족을 인간본성으로 찬양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라는 것이다. 스미스의 취지는 모든 덕목을 교양(propriety)으로만 환원하는 당시의 고답적 세계관에 반대하여 인간의 자기애와 감각적 추구, 이타적 지향 등 다양한 차원이 인정돼야 좋은 사회가 된다는 것이었다.
기업가들은 우리 사회 지도층의 한 부분을 구성한다. 그 만큼 사회의 도덕적 품격에 대해서도 책임을 갖고 있다. 큰 기업의 경우 웬만한 시장·군수나 공직자들에 비해 그 책임이 덜하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기업은 이윤을 내는 데 기본적인 역할이 있다. 그럼에도 그 기업에 소속됐다는 사실 더 나아가 그런 기업을 가진 나라의 국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자긍심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면 무리한 기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