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유통업 결산 및 전망] <10> 재래시장

특화된 '문화마케팅'이 활로
할인점·슈퍼마켓에 밀려 체감경기 '꽁꽁' 내년 정부 1,000억원 지원도 효과불투명


“IMF요?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임대료도 못 내는 데 뭐” 재래시장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한 상인의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엄연한 사계절이 있지만 올해 재래시장에는 단 한가지 계절만 존재했다. 바로 겨울. 그것도 너무나 혹독한 겨울이었다. 극심한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할인점ㆍ슈퍼마켓에 손님을 뺏겨버린 재래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웠다. 지방의 소규모 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 중앙시장 등 대형 재래시장도 손님들 발길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장사가 안돼 임대료도 내지 못하는 상인들이 늘어났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재래시장 자체가 사라지기도 했다. ◇끝이 없는 추락=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2ㆍ4분기부터 서울 등 6대 광역시 재래시장 상인 720여명을 대상으로 시장경기실사지수(MSI, 매출기준)를 조사한 올 한해 100을 넘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수치가 100이상이면 현재보다 앞으로의 경기가 더 좋아질 것으로, 100이하면 더 나빠질 것으로 보는 것을 뜻한다. 시장상인들의 80%가량은 시장경기 침체의 원인으로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감소’와 ‘서민경제 위축’을 꼽고 있다. 서민들은 백화점이나 할인점 보다는 재래시장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서민층의 경제능력 악화가 재래시장 경기침체의 주요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전경련 이상호 조사역은 “올해는 광우병, 조류독감, 만두파동 등 각종 악재가 겹쳐 재래시장 상인들의 체감경기는 그야말로 사상 최악이었다”면서 “주요 소비층인 서민들의 가계부채, 실업, 신용불량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내년 1월초 발표될 예정인 2005년 1ㆍ4분기 지수는 올 4ㆍ4분기에 비해 크게 나빠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정부지원 성공 여부 불투명= 내년에는 ‘재래시장육성을위한특별법’이 시행되고 정부가 재래시장 현대화를 위해 1,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지원한다. 하지만 이 같은 지원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재래시장의 주요 고객인 서민층의 가계경제가 좋아지지 않고, 아무리 재래시장 현대화에 투자한다고 해도 할인점과 슈퍼마켓의 현대화 수준을 재래시장이 따라잡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장상인들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남대문시장의 한 상인은 “돈 몇푼으로 어떻게 백화점ㆍ할인점 수준으로 시설이 나아질 수 있겠느냐”면서 “정부지원으로 이미 주차장 등의 편의시설을 갖춘 재래시장도 몇몇 있지만 효과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특성화 통한 문화마케팅 나서야= 시장상인들은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자금지원 보다 근본적인 치유를 원하고 있다. 즉, 전반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통해 서민경제의 주름을 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민들의 집안살림이 풀리지 않는 한 재래시장의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쇼핑 편의를 돕기 위해 주차장 시설 등을 확충하는 현대화 작업과 더불어, 각 시장특성에 맞는 다양한 문화마케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런 측면에서 전경련의 시장경기실사지수 결과 다른 지역은 대부분 100이하를 기록했지만, 부산만 유독 3분기 연속 100이상을 기록한 점은 눈 여겨 볼 부분이다. 부산의 재래시장은 대부분 수산물 시장으로 현지 특성에 맞게 특화되었으며, ‘자갈치 시장’등은 브랜드화에도 성공했다. 또한 매 철마다 다양한 문화축제와 볼거리를 제공해 재래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취를 살려냈다. 동대문의 대형쇼핑몰 두타의 이승범 사장은 “지금 이대로라면 재래시장은 고사할 수 밖에 없다”며 “재래시장을 살리려면 재래시장의 고유한 특성 강화와 현대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하고, 손님들이 가격, 품질 등을 믿고 살 수 있는 신뢰가 회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