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46) KT 베이징 사무소장을 평가할 때 KT 직원들은 `여걸`이란 표현을 서슴없이 쓴다.
“술도 잘 못 마시는데 여걸이라뇨. 아마 일하는 스타일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거겠죠”
이 소장은 지난해 2월 KT 22년사에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임원(상무보)에 올랐다. 이는 KT뿐 아니라 국내 공기업 사상 최초의 일이기도 하다.
“여성이기 때문에 혜택을 받은 것 같습니다. 회사내 후배들도 꾸준한 자기계발을 통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KT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의 이력을 보면 그가 결코 운이나 배려로 임원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항공대 통신공학과를 졸업하고 제16회 기술고시(80년)에 합격해 81년 체신부 사무관으로 KT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벨기에 BTM사 파견, 미국 미시간주립대 연수, KT 영동지사 교환 기술부장, 네트워크본부 인터넷 설계팀장을 거쳐 지난해 8월부터 글로벌 사업단의 해외 ADSL사업팀장을 맡아오는 등 엔지니어로서 화려한 경력을 쌓아왔다. KT에서는 드물게 미국이 아닌 유럽(벨기에 브뤼셀대)에서 수학한 유럽파이기도 하다.
이 소장은 지난 2001년 해외 ADSL사업팀장으로 재직하면서 중국 등 아시아지역에 200만회선의 ADSL 계약을 따내는 수완을 발휘했다. 우리나라가 국제무대에서 `ADSL의 종주국`으로 부상하는 데 크게 기여해온 셈이다. 임원 승진 직후 베이징 지사장으로 발령받게 된 것도 그의 경력과 열정, 리더십이 높이 평가됐기 때문이다.
남편인 임순철씨(48)도 KT 법인영업단 대형고객1팀장으로 재직중이다. 부부가 KT맨인 셈이다. 대학때 우연히 선후배로 알게 된 인연이 이 소장의 KT입사 2년후인 83년 결혼으로 이어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남편보다 먼저 임원 자리에 올라 조금 미안합니다. 하지만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좋은 일들이 있겠죠”
그는 요즘 어느때보다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월말이면 베이징사무소가 법인으로 재출범하는 탓에 관련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주말에도 제대로 쉬기 힘들다고 전한다. 전화 인터뷰 중에도 바쁘게 이곳저곳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분주한 이 소장에게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는 중국 시장의 가능성을 길게 보고 있었다.
“중국 시장에 뛰어든다고 당장 큰 매출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향후 2~3년내에 중국은 국내 초고속인터넷 서비스ㆍ장비업계에 가장 큰 시장으로 부상할 것입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미리 준비하고 파트너십을 쌓는게 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KT최초의 여성임원`이라는 찬사를 뒤로 하고 중국에서 또다른 산에 도전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IT시장으로 급부상하는 중국에서 그가 KT의 초고속인터넷을 어떻게 뿌리내릴지 주목된다.
<정두환기자 dhch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