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80> ‘내 나이가 어때서’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 사랑의 나이가 있나요 / 마음은 하나요 느낌도 하나요 / 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 / 눈물이 나네요 내 나이가 어때서 /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오승근씨가 부른 ‘내 나이가 어때서’는 1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대가 공감한 노래다. 이 노래에 끌리는 구체적인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저간에는 ‘사회적인 시선이 주는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네가 지금 이런 거나 하고 있을 나이냐’는 식의 우려(비록 애정에서 비롯되었다 할지라도)섞인 피드백은 하나같이 못마땅하다. ‘그러는 당신은?’이라고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일단 참는다. 특히 이런 핀잔을 윗사람이 줬다면 ‘허허’하고 사람 좋은 웃음을 보태 당황스러운 순간을 넘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분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면전에 대고 속 시원히 이야기하지 못해 마음에 응어리가 생긴다. 바로 이럴 때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는 꽤 효과적인 치료법이다. 면전에서는 하지 못한 대답을 하는 셈이니까.

‘할 말은 하고 살자’고들 이야기하면서 주변에서 용기를 내면 ‘객기’ 취급하기 일쑤다. ‘찍히면 죽는다’는 경험 때문이다. 결국 튀지 않기 위해 참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화가 쌓인다. 전문가들은 화를 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를 찾아가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애초에 맞설 수 없어 ‘무작정 참기’를 선택한 사람에게 가능할 리 없다. 상대는 모르게 나 혼자 화를 삭일 수 있는 소극적인 자기방어 방법이 필요하다. 오늘따라 구성진 가락에도 불구하고 내 나이가 어때서 그러느냐고 묻는 가사가 서글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참고 사는 사람은 자기 결정성(Self-determination)이 점점 저하된다고 한다. 오랫동안 표현하지 않고 억누르는 습관으로 인해 본질적인 욕구마저도 왜곡되는 현상이다. 옛날 우리 할머니들이 냉가슴을 앓다가 화병만 생기고 만 것처럼, 참고 사는 사람들은 상황을 변화시키지도 못할뿐더러 자기 자신의 판단력과 주관마저도 흐리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자기계발서 제목처럼 ‘미움받을 용기’를 연습하고 고민해야 하나보다. 첫술에 배부르랴. 누군가 나의 화를 억누르고 있는데 직접 분노를 표현할 길이 없다면 담벼락에 돌이라도 던지자. 더 젊어지고 싶고 과감해지고 싶은데 시선이 두렵다면 나만 알아챌 만큼 작은 것부터 바꿔 보자.

아쉬운 것은 용기를 내고자 집어든 책이 변화와 태도의 전환만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정작 가장 중요한, 점진적으로 그 과정을 진행시키는 방법에 대해서는 함구하고서.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다섯 번만 되뇌어도 삶을 사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지침을 내려 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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