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귀국 후 두달반 동안 영국에 수사관을 보내고 DJ 정부 경제담당 관료들을 조사하는 등 다각적 노력을 기울였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수사를 종료했다.
김씨에 대한 수사의 초점은 ▲대우 해외금융조직인 BFC(British Finance Center)를 통한 거액의 재산도피 의혹 ▲대우그룹의 비자금 조성 및 정치권 로비 의혹 ▲김씨의 석연찮은 출국배경 등 크게 세 가지였다.
1997∼1998년 대우그룹 5개 계열사의 20조 안팎의 분식회계를 이용해 9조2천억원대 사기대출을 받고 적법한 신고 없이 200억달러의 외환거래를 한 혐의도 있었지만 이미 대우그룹 임원들이 대법원 판결까지 받은 터라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검찰의 주된 관심사는 김씨가 BFC를 통해 거래됐다는 200억달러(25조원) 중 일부를 프랑스 포도농장, 아들 대학 기부금, 본인 카드 사용대금, 임원에 대한 전별금등으로 유용됐다는 의혹이었다.
검찰은 특히 BFC 내 비공식계좌인 `K.C(King of Chairman)어카운트'가 김씨 개인돈을 관리하는 계좌라는 점에 착안, 영국 현지에까지 수사관을 파견해 BFC 관련자료를 입수해 자료를 분석해왔다.
하지만 BFC 내에는 본래 김씨 개인돈과 대우 회삿돈이 혼재하는데다 대우사태를목전에 두고 이 자금들이 마구 뒤엉켜 집행되고 관리된 사실이 나타나면서 검찰은개인채무 변제와 미술품 구입 등 수백억원 규모의 횡령 혐의를 확인하는 데 만족해야만 했다.
비자금 조성의혹도 검찰이 수사력을 총동원해 규명하려 했으나 성과가 미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과거 대우자동차판매㈜가 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이나 이재명 전 민주당 의원등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례가 있었고 정계에는 `김우중 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소문도 파다하게 돌았지만 결국 이런 의혹의 진위 확인에 실패했다.
전직 임직원들이 `부스러기' 자금 외에 굵직굵직한 자금은 모두 김씨가 직접 집행했다고 진술한데다 김씨는 "기억이 안 난다"며 함구하고 김씨의 마지막 비서였던재정담당 임원 이모씨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린 게 수사 실패의 주요인이었다.
과거 전ㆍ노 비자금 사건 당시 재계 서열 1위인 삼성 이건희 회장보다 50억원이더 많은 150억원의 뇌물을 전달한 김씨의 `로비력'이 이번에 재차 확인될 것이란 관측도 `김씨 입만 바라보는 수사'로 인해 무위로 끝났다.
1999년 10월 당시 김씨의 석연찮은 출국배경에도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으나 그동안 제기된 온갖 추측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
`김씨가 해외에 나가면 대우차 등 일부 경영권은 보전해준다'는 식의 `DJ정부청와대 교감설'이 시중에 나돌았지만 이번 수사에선 `정부 관료 중 아무도 명시적으로 출국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쪽으로 결론이 기울었던 것이다.
정부측이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대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대마불사'식 논리에 익숙한 김씨와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었고 "김씨 때문에 대우문제 해결이 잘 안 된다"는 말을 대우 임원들이 일종의 `출국강요'로 해석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대검 중수부가 나서서 두 달 반 동안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이렇게 `초라한'성적표를 낼 수밖에 없었던 데는 사실 검찰로서도 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장애가 있었다는 의견이 유력하다.
우선 수사 대상이 6∼7년 전의 일인 데다 검찰이 2000년 대우사건 수사 당시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회계사 부정 등에 집중하느라 비자금이나 정관계 로비설 수사에대비한 관련 자료를 미리 챙겨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검찰 관계자도 "2000년 수사 때 차라리 대우 회계사들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았다면 수사력을 김씨 비리 의혹에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수사의 가장 큰 난관이 됐던 것은 과거 위암ㆍ뇌혈종ㆍ대장종양 등 수술을 받은 데다 허혈성 심장질환 등 각종 질병을 안고 있던 김씨의 건강.
김씨는 수사 도중 장폐색으로 구치소로 옮겨지는가 하면 결국 심장질환으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수술까지 받게 되자 검찰은 `더 이상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수사진행이 어렵다'고 판단, 수사를 마무리했다.
수사팀은 수사를 하다 보면 김씨가 `진상규명' 차원에서라도 비자금 의혹이나출국배경 등에 대해 입을 열 것으로 기대했지만 김씨의 입은 끝까지 굳게 닫혔고 김씨의 `생명의 위협'은 검찰에겐 `수사의 위협'이 되고 말았다며 `미완의 수사'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