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예상과는 달리 이라크전쟁이 중장기전으로 전개되면 물가가 급등하고 경기는 침체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일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런 스태그플레이션을 차단하기 위해 다각적인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북핵문제 등 내부적인 불안요인에다 이라크 전쟁 장기화로 유가가 다시 급등세를 보일 경우 재정투자, 감세 등 동원가능한 정책 수단은 모두 활용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인식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에너지 수급 차질을 막기 위해 정부의 석유비축물량 확대, 소비억제 등 다각적인 방안을 준비중이다. 이를 위해 현재 중동 현지에서 국내로 향하고 있는 유조선 운항 일정을 24시간 내내 모니터링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재정확대ㆍ감세ㆍ금리인하 등 정책수단 강구=이라크전쟁이 장기화되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실로 엄청나다. 유가급등으로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기업의 투자축소, 소비급감 등으로 경기침체가 가속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도 이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재정집행확대, 금리인하, 감세 등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할 계획이다.
정부는 먼저 감세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33달러선에 육박하면 교통세 및 특별소비세 등을 단계적으로 낮춰 나갈 방침이다. 이와 함께 금융시장 안정화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원화 환율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상승할 경우 국책 금융기관과 정부투자기관을 통해 외화차입을 늘리는 한편 외채상환은 연기해 나갈 계획이다. 또 외환시장에 대한 정부의 직ㆍ간접적인 개입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정부는 현재 외환보유액이 1,200억달러를 넘는 만큼 이를 동원해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적자재정 감수하더라도 경기안정에 주력=김진표 부총리겸 재정경제부장관은 최근 “3년 정도의 중기전망에 따른 탄력적인 재정운영이 바람직하다”면서 “필요에 따라 연간으로는 적자재정을 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경기대응 수단으로서 재정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김 부총리의 발언은 결국 경제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더 악화될 경우 적자재정을 편성해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정부가 경기침체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장 먼저 동원할 수 있는 카드는 바로 `재정투자 확대`다. 감세조치도 유력한 카드지만 기업 투자 및 소비확대가 따라주지 않는 한 충분한 효과를 내기도 어렵다. 효과면에서도 재정집행만한 수단이 없다. 콜금리 인하 등 금융완화정책도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금리가 인하된다고 해서 곧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는 어렵다. 보통 금리가 기업ㆍ가계 등 경제주체의 수요확대를 가져오는데는 보통 6개월의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또 최근과 같이 시중유동성이 넘쳐 흐르는 상황에서는 금리인하가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지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기 어렵다.
◇에너지수급 차질 최소화에 주력=이라크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가장 큰 걱정거리 가 유가급등과 에너지 수급 차질이다. 정부는 우선 유가 급등에 따른 충격에 대해서는 특소세 등 내국세 인하 및 유가완충자금(5,000억원) 집행 등을 통해 대처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에너지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 경제 자체가 `올 스톱(all stop)`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수급안정에 총력을 쏟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현재 에너지수급차질을 막기 위해 24시간 모니터링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중동 현지에서 유조선이 국내로 들어오는데는 약 3~4주가 걸린다. 현재 국내 유류소비량(화학제품 연료인 나프타 포함)은 약 210만 배럴에 달한다. 유조선 한 척당 200만 배럴을 수송하기 때문에 원유반입이 며칠만 지연돼도 심각한 수급불균형이 빚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원유수송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국제에너지기구(IEA)와의 협조를 거쳐 비축유(현재 96일분)를 방출할 계획이다. 또한 정부는 최근들어 민간비축물량이 감소하고 있는 만큼 정부비축물량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정문재,임석훈기자 sh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