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회백색 수직 절벽이 병풍처럼 앞을 가로막았다. 배는 프로펠러 역회전의 둔탁한 소리를 내며 옆으로 방향을 튼다. `남해의 해금강`이란 별칭이 무색하지 않게 백도는 바다 한 가운데 그렇게 불쑥 솟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 덩어리로 보였던 섬이 서서히 쪼개지기 시작한다. 한 덩어리가 두개, 두개가 네개가 되고 네개가 여덟 조각으로 갈라지는 찰라, 바다는 온통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위 덩어리로 꽉 차 있었다. “손님 여러분, 즐거운 여행길 얼마나 피곤하십니까”로 시작하는 안내원의 멘트는 오히려 경외의 순간을 가로막는 이물질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살지 않은 섬 백도는 거문도에서 동쪽으로 28km 떨어진 자리에 있다. 바위 색깔이 온통 하얀색이라 백도라 하기도 하고 섬의 개수가 100개에서 1개가 모자라 백도가 됐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는 노적선 바위, 시루떡바위, 서방바위, 석불바위, 촛대바위, 물개바위, 곰바위, 감투바위 등 39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됐다는 게 안내원의 얘기다. 무인등대가 있는 상백도가 육중한 바위들로 남성적인 특징을 보인다면 하백도는 기암괴석들의 집합체로 여성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상백도에는 벌써 봄이 와 있었다. 동백나무, 후박나무, 보리수나무 등 남방계 식물로 이뤄진 작은 숲속은 이름모를 꽃들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일년내내 바람이 심한 점을 감안하면 이만치 꽂을 피운 것이 대견할 따름이다. 거문도의 활짝 핀 동백과 유채꽃이 결코 부럽지 않다.
백도는 현재 개발과 보존의 몸살을 앓고 있다. 몇 년전부터 관광객들의 백도 상륙이 불허되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는 게 거문도 주민들의 푸념이다. 1시간만 배를 띄워도 팔뚝만한 우럭, 도미 등을 40~50마리 잡을 수 있는 천혜의 해양 낚시터를 적당한 관광상품과 결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광물상 및 동식물상의 보고로 알려진 백도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챦다. 백도는 기묘하게 생긴 화강암 덩어리외에도 풍란 등 30여종의 식물과 산호 및 해면 등 170여종의 해양 동식물들의 서식처로 알려져 있다.
여수 시민협의 임현철 사무국장은 “지난해에도 주민들의 도회지 전출이 늘면서 거문도 전체 인구가 2,000여명으로 줄었다”며 “소득 감소가 가장 큰 이유인 만큼 환경훼손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관광개발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천혜 군사기지 거문도엔 곳곳 전쟁상흔이
거문도에는 영국군 묘지 가 있다. 지난 186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거문도를 오가며 작전을 수행하던 중 사망한 영국 해병 10여명중 3인의 흔적이다. 영국은 구한말 러시아의 남진을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빈번하게 거문도 인근 해역을 드나들었다. 1885년부터 87년까지 2년7개월 동안에는 아예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고 해군의 동방 전초기지로 사용했다.
거문도는 지형구조부터가 천혜의 군사기지다. 남북으로 열린 뱃길은 선박들의 자유로운 기항을 가능케 하고 동도, 서도, 고도 등 3개의 섬으로 둘러 쌓인 내항은 소규모 군대의 정박지로 사용하기 안성맞춤이다. 거문도 인근 해역에서는 청ㆍ일전쟁, 러ㆍ일전쟁의 흔적도 발견된다.
현재 거문도의 고도와 서도는 삼호교라는 다리로 연결돼 있으며 배로 약 30분 떨어진 초도는 염소, 오리등을 키우기 좋은 초지가 많아 보양관광단지 건설이 추진중이다. 여객선터미널이 있는 고도가 행정 및 상업 중심지라면 서도는 거문도의 전통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문화 중심지다. 1591년 이순신 장군이 왜인들을 내쫒고 정착이 이뤄지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400년 전통의 거문도 뱃노래(전남 무형문화제 제1호)도 이곳 서도가 본고장이다.
<강동호기자 easter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