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 '실종'
감원·고령자 대거 명퇴로
기업에서 '정년퇴직'이 '실종상태'를 보이고 있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고령 직장인들이 대거 직장을 떠나면서 최근들어 정년퇴직자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특히 신인사제도에서 직급별 정년제를 도입, '정년퇴직 실종사태'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한 기업과 상대적으로 불황의 골이 깊은 업종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구조조정 모범기업'으로 불리는 한화는 IMF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지난 2년간 단 한명의 정년퇴직자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룹측은 "앞으로 상당기간 정년을 맞을 직원이 없다"고 밝혔다. 두산도 사정이 비슷하다. 두산은 지난 95년부터 지속적인 감원을 실시하면서 정년퇴직자가 격감하고 있다. ㈜두산 주류BG와 두산테크팩은 지난해 각각 10명 내외의 정년퇴직자를 '배출'했으나 올해는 5명에도 못미칠 전망이다.
두산 관계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간 간부들이 퇴직하면서 빚어진 현상"이라며 "생산직 직원들도 명예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나 정년을 채우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의 전도사'로 불리는 효성그룹도 환란 직후 정년을 앞둔 50대 직원 가운데 30%를 정리, 올해 정년 퇴직자는 예년의 절반수준인 15명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잘나가는 기업도 마찬가지. 삼성전자 4만여명의 전체 임직원 가운데 퇴직자는 99년 10여명에서 지난해는 여기에 못미쳤다.
이는 '조용한 구조조정'에 따른 것. 삼성은 지난 98년에만 2,000여명이 퇴직했고, 서비스㈜의 분사, 부천 페어차일드 반도체 매각 등으로 5만5,000명이 4만명으로 줄였다.
삼성 관계자는 "승진 고과제가 엄격해 대리, 과장, 부장 등의 직급을 거치며 순차적으로 탈락하고 있다"며 "보통 47~48세쯤 임원으로 승진 못한 부장은 대부분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고 말했다.
앞으로 최소 10년 정도는 정년퇴직자를 볼 수 없는 곳도 적잖다.
SK㈜에서는 50대 관리직원이 단 한명도 없다. 따라서 10년가량 정년(60세) 퇴직자를 볼 수 없다. 경제단체 가운데서는 대한상의가 대표적인 케이스. 대한상의는 IMF 위기 이후 50대 직원 20명을 명예퇴직 시킨데 이어 최근 다시 인력감축을 단행, 조직에서 50대가 모두 사라졌다. 정년퇴직자가 있는 기업에서도 그 수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한중은 올해 두산에 인수된 뒤 400여명을 명예퇴직시켜 올해 정년을 맞는 사람이 당초 100여명에서 50명으로 줄었고, 포철은 99년 34명에서 지난해 48명으로 늘어났으나 올해는 51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와 반대로 구조조정의 '무풍지대'에서는 정년퇴직자가 예년 수준을 유지하거나 늘어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00여명으로 예년 수준과 비슷한 퇴직자를 기록했고, 대우조선은 해마다 20~30명이 정년을 맞았으나 올해는 50명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들은 "구조조정이 지속되면서 이 같은 현상은 가속화할 것"이라며 "노하우를 갖추고, 숙련 노동자인 50대의 능력을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을 국가적 과제로 검토할 때"라고 지적하고 있다.
채수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