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경부선에 얽힌 사람들의 애환과 추억


이수광 지음, 효형출판 펴냄 본래 말 잘하던 사람은 ‘구변쟁이’라 했다. 하지만 경부선 열차 속에서 ‘청심보명단’을 팔아서 거부가 된 이경봉이라는 사람 이후 말 잘하는 사람을 ‘약장수’라 부르게 됐다. 하룻길이던 서울과 인천이 기차를 타면 불과 한 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당시 조선인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죽기 전에 기차 한 번 타보겠다고 사람들은 보리 팔고 쌀 팔아 기차를 탔고 그 증거로 ‘청심보명단’을 사왔다. 1905년에 개통된 경부선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근ㆍ현대사의 산증인으로 자리잡아 왔다. ‘나는 조선의 국모다’, ‘소설 열국지’ 등의 역사소설을 써온 이수광 작가는 ‘경부선’ 철도를 둘러싼 사람들의 애환과 추억을 책에 담았다. 일본에 의해 건설된 경부선 철도는 건설 당시 ‘힘깨나 쓰는 장정 철도 역부로 끌려가고, 얼굴 반반한 계집 갈보로 끌려간다’는 노래가 불릴 정도로 피와 눈물로 건설됐다. 개통직후 경부선은 러일전쟁에 나서는 일본군을 실어 날랐고 일확천금을 꿈꾸며 조선으로 몰려든 일본인을 경성으로 실어 왔다. 경부선은 문학작품과 노래 가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김동리의 단편소설 ‘밀다원 시대’에서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김동리는 가족을 남겨두고 혼자 장장 27시간이 넘게 걸리는 눈물의 마지막 피난 열차를 탄다.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 정거장’은 유행가 가사라 하기엔 너무도 애절한 부산에서의 이별을 그린다. 책은 경부선의 탄생부터 개화의 물결과 전쟁 속 피난민을 실어 나른 초기 모습, 여객을 싣고 화물을 운송해 경제개발을 위해 달렸던 ‘한강의 기적’ 시기까지 경부선과 함께한 한 세기의 역사를 펼쳐본다. 1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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