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두 번째 원유매장국 이라크를 손아귀에 넣은 미국의 다음 목표는?
무력 시위의 차원으로는 시리아, 이란, 북한 등이 거론되지만 보이지 않는 타깃은 국제석유 카르텔 석유수출국기구(OPEC)다. 지난 30년간 국제석유시장을 휘둘러 온 OPEC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국제유가의 하향 안정이라는 오랜 정책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속셈인 것.
미ㆍ영 군의 이라크 공격을 강하게 비난해 온 프랑스와 러시아도 가만히 있지 않을 태세다. 이라크 전을 통해 미ㆍ영에 뺏긴 석유 이권을 제2라운드에서는 만회해야 하기 때문. 이에 따라 이라크에서의 전쟁이 종결된 후에도 석유 이권을 둘러싼 전쟁은 오히려 확전양상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분열상 보이는 OPEC=회원국 간의 결속력이 전례 없이 약화되며, OPEC이 지난 30년간 지켜온 국제석유시장에서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며 붕괴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친미성향을 고수하며 리더십을 잃어가고 있다. 나머지 10개 회원국들도 자국의 이익이 조금이라도 침해 받으면 OPEC의 이익을 깡그리 무시해 버리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OPEC 회원국들이 지난 달 말 하루 산유량을 2,450만 배럴로 합의해 놓고도 실제로는 2,700만 배럴을 생산해 오고 있는 것은 OPEC 결속력 약화를 보여주는 극명한 예다. 베네수엘라의 석유전문가인 비토르 폴레오는 이에 대해 “이라크 같은 주요 석유수출국이 군사적으로 점령됨에 따라 OPEC의 분열 양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다른 회원국들의 중장기 이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라크 탈퇴 여부 관건=베네수엘라 에너지 장관을 역임한 훔베르토 켈더는 “이라크에서의 석유 생산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며 “OPEC을 약화시키거나 파괴시키기 위한 계략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런던 소재 세계에너지연구소의 레오 드롤라스도 “전후 이라크는 복구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빨리 가능한 많은 석유를 생산하려 할 것”이라며 “OPEC이 이를 거부하면 이라크는 OPEC 탈퇴를 결정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어 “이라크가 탈퇴하면 OPEC은 사망신고를 한거나 마찬가지”라며 붕괴가능성을 우려했다.
OPEC은 창설 멤버인 이라크를 잡아 놓기 위한 노력을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특히 지난 30년간 지탱해 온 쿼터제를 수정하는 방안이 향후 OPEC 회동의 아젠다로 설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OPEC의 한 관리는 “쿼터제 수정을 위해 전문가들이 6월에 회동을 갖고 9월 경에는 새로운 제도를 제안할 것”이라고 AFP통신에 밝혔다. 이 외에도 OPEC이 생산 쿼터를 크게 늘려 주거나 일정기간 생산 쿼터에 구애 받지 않는 특수 지위를 부여하는 등의 혜택을 이라크에 제공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전세계적 이해 충돌 가능성=지금까지의 전세는 미국과 영국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려됐던 바와 달리 미ㆍ영군의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 중동지역의 석유수출에 별다른 차질이 빚어지지 않은 데다, 이라크의 유전도 별다른 손실 없이 미국의 손에 넘어 갔기 때문이다. 또 이라크의 탈퇴 여부에 관계 없이 OPEC의 세력 약화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미ㆍ영 주도의 석유소비국이 OPEC 무력화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서아프리카, 남미 등 석유가 있는 곳이면 어디로든 전선을 넓혀 가리라는 것. 그렇게 되면 이 지역에서 이미 이권을 가지고 있는 다른 강대국과의 충돌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목 받고 있는 지역은 카스피해 연안. 2,00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이 지역은 아직 개발 초기 단계라, 자원선점을 위한 각국의 이해가 부딪치고 있다. 미국계 석유 메이저들은 카스피해 유전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에 90년대 후반부터 진출, 2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하지만 러시아도 이 지역이 구 소련 영토였다는 점을 들어 일정한 지분 확보를 노리고 있어 이해관계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라크에서의 전쟁이 종결된 후에도 석유 이권을 둘러싼 전쟁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ㆍ영군의 이라크 공격을 계기로 발생한 국제사회의 분열상도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있다.
<김대환기자 d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