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마켓 인사이드] 판 커진 '왕서방' 부동산 쇼핑… 미국·유럽 주택시장 들썩

국영기업 외 PEF·부동산개발업체·보험사 가세
작년 157억弗 유입…15년새 250배 이상 불어나
호주, 자본시장 교란 우려 규제강화 등 역풍도



중국 '왕 서방'의 손짓에 전 세계 부동산시장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미국, 유럽 주요 도시의 랜드마크마다 중화자본이 밀려들면서 주택시장이 들썩이는 형국이다. 글로벌 부동산 시장에 유입된 차이나머니는 지난해 기준으로 157억2,000만달러(약 17조3,014억원)에 달해 지난 2000년 대비 무려 250배 이상 불어났다. 과거에는 주로 중국 국영기업들이 해외부동산 매집에 나섰으나, 이후 중국계 사모투자회사(PEF), 부동산개발업체, 대형 보험사들까지 투자 대열에 끼어들면서 판이 커졌다는 게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최근 분석이다. 중국 큰손들의 사재기는 전 세계 부동산 중에서도 기념비적 가치가 있는 요지의 '트로피 애셋'을 겨냥하고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월도프 아스토리아에서부터 호주 골드코스트에 위치한 해변 리조트시설, 영국 런던 금융가의 로이드 빌딩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휴양 등의 분야에서 최고 명소로 꼽히는 알토란 자산들에 '오성홍기'의 깃발이 꽂힌 상태다.

특히 최고급 호텔인 월도프 아스토리아가 중화자본으로 손바뀜된 것은 전 세계 자산시장에 큰 충격을 던졌다. 매년 9월 유엔총회가 열린 월도프 아스토리아는 그간 '세계 정상들의 외교 무대', '미국의 자존심'으로 불릴 정도로 상징성이 큰 명소였기 때문이다. 중국 안방보험은 19억5,000만달러(약 2조800억원)의 거금을 들여 이 호텔의 새 주인으로 나섰다. 안방보험은 최근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26층 규모의 업무용 빌딩까지 블랙스톤 그룹으로부터 5억 달러(약 5,526억원)에 사들이면서 미국 부동산 매입 러시를 이어가고 있다.

◇차이나머니, 약이냐 독이냐=중국 자본의 물결은 침체된 유럽 등 각지의 자산시장에 모처럼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블룸버그는 포르투갈 정부가 세계적인 경기 불황 속에서도 지난해 1.5%의 경제 성장률을 올린 데는 중국인들의 부동산 투자 효과가 컸다고 전했다. 포르투갈은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 2012년부터 부동산에 최소 50만 유로(약 6억 1,600만원)를 투자하면 영주권을 주는 '골든비자'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2013년 이후 2년간 거주 허가증을 받은 외국 부동산 투자자 1,775명 가운데 약 80%가 중국인이었다. 재정위기에 처한 그리스도 영주권으로 왕 서방을 유혹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그리스에서 부동산을 구매한 외국인 중 40~45%가 중국인이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왕 서방의 투자에 대한 시선이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워낙 단기간에 요지의 부동산들이 중화 일색으로 손바뀜되다보니 서방에선 중국 자본이 시장을 교란시키는 데 대해 경계하는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외국인 주택매입 제한 규정을 근거로 중국 업체가 최근 구매한 3,100만 달러(약 342억원) 상당의 주택을 강제매각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호주 정부의 조치가 "중국인의 해외 부동산 쇼핑에 대한 역풍"이라며 차이나 머니에 대한 세계 각국 정부들의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시스템리스크, 반부패드라이브가 '방아쇠'= 아직 서구 자본에 비해 글로벌투자 경험이 적은 중국인들은 해외 현지의 법·제도나 문화 차이에 따른 투자 리스크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섣불리 투자했다가 낭패를 보기도 한다. 중국 상하이 소재 둥두인터내셔널그룹(DDI)이 그 대표적 사례다. DDI는 2년 전 미국 디트로이트의 랜드마크인 데이비드 스톳 빌딩을 사들였다가 세입자들과 법적 소송에 휘말렸고, 결국 이 건물은 입주자가 없는 '깡통건물'로 전락해 DDI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이처럼 투자실패로 비싼 수업료를 무는 사례도 있지만 왕 서방의 해외 부동산 매집 열풍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경기둔화와 부동산시장 거품붕괴와 같은 자국 내 시스템 리스크가 차이나머니의 본토 이탈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지난 18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70개 도시의 2월 신규주택 평균 가격이 6개월 연속 하락세를 지속하며 전년 동월 대비 5.7%나 떨어졌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반부패를 모토로 내걸고 지하경제·탈세 척결에 나서면서 사정 한파를 피하려는 도피자금이 치외법권 지대를 찾아 유럽이나 미주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의 미국 자산투자 브로커 역할을 하고 있는 리얼에스테이트 글로벌 파트너스의 마이클 고든 부회장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인들은 언제 하루아침에 재산을 몰수당할지 모르는 중국보다는 미국 등 해외에 자산을 분산시키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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