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그룹의 올 투자계획은 지난해보다 오히려 소폭 줄어들었다. 투자가 아니라 버티기조차 힘들다는 응답이 주류를 이루었다. 어려운 기업의 속사정을 말해주는 대목이다.24일까지 투자계획을 확정한 13개그룹의 투자내용을 살펴보면 LG가 지난해 수준에서 동결했고 절반(6개)이 넘는 그룹은 투자를 늘리고 나머지는 줄여 균형을 이뤘다. 그렇지만 전체 투자규모는 지난해 24조1,000억원에서 올해는 23조8,000억원으로 소폭 줄어 들었다.
공통점은 모두가 설비의 유지보수 등 최소한의 투자만 계획하고 있을 뿐 신규투자를 거의 중단하고 있다는 점. 신규투자는 현대의 대북투자와 통신 기지국 건설이 전부다. 이같은 투자 규모는 예년에 비하면 70%에도 못 미치는 수준.
대기업들이 이처럼 축소경영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환율이 달러당 1,200원 아래로 떨어지는 등 경기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한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투자할 자금의 여유가 없는 것이 더 큰 이유다. 연말까지 부채비율 200%를 맞추어야 하는데다 외자유치 또한 그리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해 쌍용·고합 등 워크아웃을 신청한 그룹의 경우는 기존 설비의 유지보수를 위한 투자조차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대해 투자 담당임원들은 『경제가 어렵다고 기초투자를 무시하면 정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연구개발 투자는 상대적으로 덜 줄어들었다. 삼성과 LG는 차세대 액정표시소자 개발에, 현대는 신차개발에 1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특히 대우는 설비투자를 절반 가까이 줄이면서도 연구개발 투자는 지난해와 같은 수준인 1조2,000억원을 유지할 예정이다.
그룹별로는 현대와 삼성이 각각 18.2%, 28.5% 늘려 잡았다. 현대는 올해 금강산 개발 등 대북투자가 본격화되고 기아자동차의 정상화, LG반도체를 인수한 반도체 부문의 시설투자 등 자금수요가 어느 그룹 보다도 많다. 이 때문에 현대의 투자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관계자의 말이다.
삼성은 환율안정과 경기회복 기미가 나타나는 점을 감안해 적극적인 투자전략을 택했다. 삼성은 1조원을 늘려 9개에 달하는 반도체 생산라인의 설비를 보수하고 북한 전자복합단지의 조성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들 외에도 효성과 코오롱도 올해 의욕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효성은 500억원을 들여 스판텍스공장을 증설하고 타이어코드 설비증설에도 200억원을 투자할 예정. 코오롱은 지난해 중지했던 경주 리조트단지 개발을 재개하고 화학신소재 개발에 33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한솔은 PCS(개인휴대통신) 기지국 건설에 5,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하지만 대우와 SK·한진·두산·동부그룹은 지난해 보다 10~46% 이상 투자를 줄일 계획. 대우는 올해 재무구조 개선 등으로 자금사정이 크게 어려울 것으로 보고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마티즈 생산라인 개체를 제외한 전체 설비투자를 유보, 지난해보다 1조원 이상 줄여 투자키로 했다. SK역시 1조3,000억원 규모의 통신기지국 건설사업을 제외한 전부문을 동결했다.
한진은 항공기 도입에 3,000억원, 선박도입 및 개조에 2,000억원 등 최소한의 투자만을 진행, 전체투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2,300억원 줄였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보다 1,000억원 이상 줄여 3천억원을 줄여잡았다. 한화는 이 자금으로 석유화학 설비증설과 새로운 주력사업으로 육성중인 관광레저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두산과 동부는 주류공장과 아산만 제강공장 설비투자를 제외한 모든 투자계획을 중단했다.
한편 대기업들은 올해 이처럼 보수적인 투자계획을 수립한 가운데 ▲구조조정의 마무리 ▲수익성 중심의 경영 ▲재무구조의 건실화 ▲경영의 투명성 제고 등을 내용으로 하는 경영목표를 제시했다. 올해도 재계는 여전히IMF의 한파가 계속될 전망이다. 【민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