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부 송주희기자 ssong@sed.co.kr
"신뢰만큼 높은 수익을 주는 것은 없다." ‘신뢰의 속도’의 저자 스티븐 M. R. 코비는 신뢰가 유형의 경제자산이라고 주장한다. 사회 전반에 신뢰의 수준이 내려가면 성공의 속도가 내려가면서 폐단을 막기 위한 비용이 올라가지만 반대로 그 수준이 높아지면 성공의 속도도 올라가고 비용은 내려간다는 것이다.
국내 주식시장은 요즘 잇단 잡음으로 신뢰의 속도가 급감하고 있다. 감속은 GS건설이 시장 예상(영업이익 500억원)을 뒤엎는 1ㆍ4분기 어닝쇼크(-5,354억원)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GS건설은 "2009년 4ㆍ4분기 수주한 프로젝트의 원가율 상승을 일시에 반영해 손실이 컸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원가ㆍ자재ㆍ일정ㆍ노무관리가 상시 진행되는 건설업종 특성 상 수주 후 4년 만에 원가율을 일시에 반영한 것은 비상식적"이라는 입장이다.
서서히 줄어들던 신뢰의 속도는 만도의 한라건설 유상증자 참여로 아예 멈춰선 듯하다. 만도는 자회사 마이스터를 통해 3,358억원 규모로 부실 계열사인 한라건설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로 하고 최근 주금을 납입했다. 문제는 한라건설이 그동안 증권사는 물론 일부 주주들에게까지 증자 참여 가능성을 부인해 왔다는 점. 결국 만도의 의결권 주식을 보유(1.77%)한 한 자산운용사는 “주주와 종업원들의 이익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냈다. 운용사 관계자는 “오래 전부터 가치를 높게 평가해 믿고 투자해 왔는데, 이런 일을 겪으니 화가 난다"고 울분을 토했다.
투자자는 기업의 현재 가치와 잠재력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주식을 산다. 이 믿음에서 돈이 기업에 투자되는 것이니 ‘신뢰는 매출ㆍ수익ㆍ성장의 동의어’라는 말까지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신뢰를 잃는 것은 도덕적 파산이라고 했겠는가.
논란의 중심이 된 기업들은 곱씹어보길 바란다. 소액이나마 믿음으로 자신들에게 투자한 이들에게 신의를 지켰는지를. 그리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고 한탄하는 증권사들도 생각해보자. 자신들이 이번 사건에서 믿음의 피해자이기만 한 것인지를 말이다. 반성이 없다면 신뢰의 속도는 어느 순간 0이 된다. 한번 멈춰선 신뢰는 차와 달라 다시 시동을 걸기도 힘든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