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회장 중징계] "금융권 '보신주의' 확산… 해외투자 위축 우려"

핵심 인재들 국내 금융계 기피… IB 산업 경쟁력 뒷걸음질 가능성
"합리적인 내부절차 거친 투자는 손실나도 책임묻지 말아야" 주장도

"투자 손실을 입었다고 금융권에서 퇴출 선고를 받는 것은 물론 집안까지 거덜날 수 있다고 하면 어떤 최고경영자(CEO)가 적극적인 의사 결정을 하겠나."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이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의 파생상품 투자 손실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데 이어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진 데 대해 한 시중은행 임원이 내뱉은 푸념이다. 금융계에서는 관가의 '변양호 신드롬'에 이어 금융계에 '황영기 신드롬'이 거세지면서 보신주의가 확산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실제 핵심 투자은행(IB) 인력들이 국내 금융계를 기피하는 등 IB의 경쟁력이 위축되는 기색도 역력한 실정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황 회장의 중징계를 전후로 시중은행들은 해외 IB 투자 및 부실기업 구조조정, 부실채권 인수 등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대주주인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의 해외투자 업무가 크게 위축될 수 있으며 다른 시중은행들도 정부 눈치를 보며 해외투자에 소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시중은행 IB업무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의 이번 조치는 한국 IB산업 경쟁력을 뒤로 돌려놓는 것"이라며 "은행들이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 신시장을 개척하지 않고 이자수익에 매달리게 하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시중은행들이 투자위험 부담이 있는 해외업무는 보류하거나 중단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CEO는 물론 실무진도 투자실패 두려움 때문에 투자결정을 극히 보수적으로 수립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일부 은행의 경우 IB 인력이 외국계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해외 IB 인력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IB 담당자는 은행 인력의 핵심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IB 인력이 외국계 투자회사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며 "국내 은행들이 해외 IB 인재를 유치하려고 해도 보수는 낮고 투자책임은 더욱 가중되고 있어 스카우트 제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권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 부실기업 인수 및 해외 IB 강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상황에서 금감원의 이 같은 조치가 내려져 안타깝다는 표정이다. 외국계 은행의 한 관계자는 "중국과 일본 금융회사들이 헐값에 나온 미국 금융회사와 상장기업에 지분을 출자하거나 사업 부문 인수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 은행들은 해외 IB에 대한 청사진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목청을 높였던 'IB강국' '동북아 금융허브'는 결국 헛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고 꼬집었다. 금융업계는 국내 은행의 IB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당국이 객관적인 기준이나 잣대 없이 사후적으로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되며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이에 기초해 해외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증권사의 한 임원은 "은행 내부적으로 준법감시제도, 투자결정위원회,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최종 투자결정을 내리게 해야 한다"며 "내부 절차를 거쳐 결정된 투자에 대해서는 손실이 나더라도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오세경 건국대 경영대학원 원장은 "앞으로 금융기관 경영진이 고위험 상품보다는 안전 자산에만 투자할 것"이라며 "금융업계에도 책임 회피 풍토가 만연해지면서 금융 산업 발전이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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