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진의 할리우드통신] 전의경 집단탈영 사건은 일제잔재?

'현해탄은 알고 있다' 등 영화서 軍 가혹행위 묘사

강원도에서 전의경 부대원들이 고참들의 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탈영한 사건은 일제의 잔재다. 일제시대 군의 가혹행위는 김기영 감독의 '현해탄은 알고 있다'(1961)에서 생생히 묘사됐다. 한운사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는 인기 라디오 드라마가 원작인 영화에서 일제시대 학병으로 군에 징집된 아로운(김운하)은 일본 선임하사들에게 매일 두들겨 맞고 기합을 받아 초주검이 된다. 아로운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악질 고참하사(이예춘)의 군화 바닥에 묻은 똥을 혀로 핥는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나 아로운은 이런 가혹행위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정의와 저항 정신을 지닌 고집쟁이였다. 아로운처럼 죽도록 고생하는 또 다른 졸병 이야기가 일본의 마사키 코바야시가 감독한 10시간 짜리 3부작 대하 서사 반전드라마 '인간의 조건'(1959-1961)이다. 코미카와 준페이가 쓴 소설 '닌겐 노 조켄'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서 주인공 가지(타추야 나카다이)는 만주의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회사가 부리는 중국인 포로들에 대한 가혹행위에 항의하다가 군에 징집된다. 가지 역시 아로운처럼 선임 하사관들로부터 온갖 기합을 받는데 그 중 하나가 변소의 대변을 통에 담아 갖다버리는 것. 이런 가혹행위에도 결코 인간성을 잃지 않는 고집쟁이인 가지는 결국 전쟁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졸병이 괴로운 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제임스 존스의 소설 원작인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주인공으로 권투선수인 프루(몽고메리 클리프트)는 권투 부대인 중대에서 권투를 포기했다는 이유로 하사관들에게 기합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아로운이나 가지와는 달리 구타는 당하지 않고 완전군장에 구보, 체육관 바닥 청소, 주말 외출 취소 같은 징계를 받는다. 그런대로 민주적이다. 프루 역시 쇠고집이어서 이런 기합에도 뜻을 굽히지 않다가 결국 죽는다. 영화에서 보듯 군이란 개체를 용인하지 않는 체제다. 그런 체제에서 민주주의를 찾는다는 것이 애당초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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