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가 복잡하고 치밀하게 20여개 계열사를 거느리면서도 드러나지 않게 계열사 돈을 자동금융거래단말기(ATM)에서 현금 뽑아 쓰듯이 야금야금 빼내 쓴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 같은 복잡한 지배구조 설계를 돕는 비호세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유 전 회장 일가의 핵심 계열사에 돌아가며 대표를 맡았던 핵심 7인방이 우선 지목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이들 외에 회계나 금융지식으로 무장한 전문가 그룹이 드러나지 않게 포진해 유 전 회장 일가의 횡령과 역외탈세 등을 도왔을 것이라는 것이다.
30일 검찰과 회계법인 등에 따르며 유 전 회장 일가는 지주회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와 다판다·트라이곤코리아·온지구 등을 중심으로 그 밑에 각각 여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고 각각의 계열사들은 또 피라미드처럼 그 밑에 또 다른 계열사를 두는 식으로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 전 회장의 장남인 대균씨가 지분을 보유한 아이원홀딩스와 다판다·크라이곤코리아는 각각 다른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고 이들 계열사들은 또 그 밑에 새로운 계열사를 두는 방식이다.
일반 대기업의 순환출자 구조도 복잡하지만 유 전 회장 일가가 보유한 계열사 구조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국내 대형 회계법인의 한 임원은 "유 전 회장 일가의 계열사 간 출자구조는 순환출자는 한두 개밖에 보이지 않고 대부분 피라미드식으로 이뤄져 있다"며 "피라미드식도 수직적이라기보다 교차적인 구조로 얽혀 있어 상당히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유 전 회장 계열사 간 순환출자는 대균·혁기(차남)씨가 19.44%씩 지분을 갖고 있는 아이원아이홀딩스→천해지(42.8%)→청해진해운(39.4%)→온지구(혁기씨 지분 7.11%)→천해지(5.23%)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만 눈에 띌 뿐 나머지는 대부분 피라미드식의 지분구조로 돼 있다.
지배구조를 복잡한 피라미드식으로 만든 것은 누가 대주주인지 한번에 파악하기 어렵게 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 회계 전문가는 "일반 기업의 지주회사는 이처럼 복잡한 지배구조로 돼 있지 않다"며 "피라미드식 지배구조에 수직·수평적으로 출자가 이뤄지다 보니 최소 두세 단계를 따라 올라가야 유 전 회장 일가(장남 대균·차남 혁기)의 이름이 보일 정도로 지배구조만 보면 누구의 회사인지 바로 알아보기 어렵게 돼 있다"고 혀를 찼다. 이 관계자는 "회계·금융·법률 전문가들의 자문 없이는 짜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문제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런 복잡한 지배구조를 고안해냈느냐는 것이다. 회계법인의 한 임원은 "특정인 이름으로 해놓으면 자금추적 등을 당할 수 있어 실질적인 오너를 숨기기 위한 목적으로 피라미드식의 지배구조를 구축해놓은 것으로 보인다"며 "한두 명의 전문가가 기획하고 나머지 세부적인 실행계획 등은 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로펌) 등이 개입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의혹의 시선은 유 전 회장의 일가 계열사의 감사업무를 맡아 온 회계법인으로 쏠리고 있다. 검찰도 최근 중앙 회계법인과 세광 회계법인 등 4개 회계법인을 동시 압수수색하는 등 베일 벗기기에 나섰다. 지배구조 자문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복잡한 지배구조를 통해 실제 경영권을 행사해온 오너를 숨기고 계열사 자금의 횡령이나 탈세 등을 은폐하기 위해 자문 등을 통해 공모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세광 회계법인 감사반을 이끌었던 공인회계사 김모씨도 관여 의혹을 받고 있다. 세광은 지난 2001년부터 최근까지 13년간 청해진해운 회계감사를 도맡아왔다. 또 천해지와 세모에 각각 11.01%와 20.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문진미디어의 전 등기임원이던 또 다른 김모씨도 지배구조 설계에 관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 전 회장의 일가의 핵심 측근 7인방인 김혜경 한국제약 대표와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 변기춘 아이원아이홀딩스 대표, 송국빈 다판다 대표, 황호은 새무리 대표, 고창환 세모 대표, 이순자 전 한국제약 이사 등은 오래 전부터 검찰의 표적이 돼왔다. 검찰은 이들 측근 7인방이 복잡한 지배구조의 비밀을 풀 열쇠를 쥐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최근 잇달아 소환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유 전 회장이 외부 전문가 자문을 토대로 직접 지분구조를 설계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 공인회계사는 "우리도 지주회사 전환 등의 자문을 수행하고 있지만 이렇게 복잡한 구조는 처음"이라며 "그러나 처음부터 의도했다기보다는 계열사가 불어나면서 점점 복잡해졌을 수도 있기 때문에 오너가 지분투자를 총지휘하고 실무진은 그대로 실행에 옮겼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