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이슈] 게텔핑거 전미자동차노조 위원장

GM 상생의 대타협 이끌어…
실용주의로 美 자동차산업 신기원 열어
복지 줄이고 일자리 선택… 他社 협상에도 적용될듯
치밀한 전략가로 80년대초엔 생산성 혁신운동 주도



지난달 26일 파업 이틀만에 제너럴모터스(GM)의 노사협상이 타결된 배경에는 로널드 게텔핑거(62) 전미자동차노조(UAW) 위원장의 합리주의ㆍ실용주의 노선이 자리를 하고 있다. GM과 UAW가 퇴직자 건강보험(VEBA)설립을 골자로 한 노동협약을 타결하자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자동차 산업의 신기원을 열었다"며 "노조와 회사가 각각 한발 씩 양보한 상생의 타협 결과"라고 극찬했다. 노조측이 경쟁력 약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과도한 복지비용을 줄이고 임금을 동결하는 데 합의한 대신 회사측은 해외 투자를 지양하고 국내 일자리를 보전해 주는데 동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회사측은 550억 달러로 추정되는 퇴직자 건강보험 비용을 300억 달러로 줄일 수 있게 됐다. 게텔핑거 위원장은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이 처한 절박한 위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면 일자리도 보장 받을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하고, 당장의 높은 임금과 복지 혜택보다는 장기적인 일자리 안정이 노조운동에서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는 협상이 교착에 상태에 빠진 지난달 9일 디트로이트 경제인클럽 연설에서 "빅3가 일본 자동차에 밀리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하면 일자리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따라서 복지혜택 축소하고 일자리를 선택한 이번 합의는 앞으로 진행될 포드와 크라이슬러와의 협의에서도 적용됨은 물론 UAW의 새로운 협상전략으로 채택될 것으로 보인다. 게텔핑거의 온건 실용주의 노선을 잘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80년대 초 그가 근무하던 루이스빌 소재 포드 트럭공장이 경쟁력 약화로 폐쇄 리스트에 올랐다. 여느 노조라면 극렬한 투쟁의 깃발을 올렸겠지만, 노조 지부장이던 그는 투쟁을 선택하지 않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혁신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높은 임금과 복지혜택만을 요구하는 노조원에게 '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설득했다. 공장내부에 100여 개의 생산성 강화 조직을 만들고 불량률을 줄이는 등 생산성 강화에 매진했다. 그 결과 루이스빌 포드 트럭공장은 살아 남았고, 북미 트럭 공장 가운데 가장 생산성이 높은 조직으로 발돋움했다. 1,000여 개의 일자리를 지킨 그는 이를 계기로 UAW 내부에서 '떠오르는 스타'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부위원장(98년)을 거쳐 2002년 위원장에 선출된 데 이어 2006년 재선에 성공했다. 게텔핑거는 과거의 위원장과 여러모로 차이가 난다. 그는 상당히 금욕적인 인물이다. 50만 명의 노조원을 둔 거대 조직의 수장이지만 운전기사를 두지 않고 직접 운전한다. 술ㆍ담배ㆍ도박을 일절 하지 않는다. 그의 동료들은 "그는 오직 일밖에 모른다. 농담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그는 UAW 위원장을 맡은 뒤 디트로이트의 오랜 전통인 '금요일 노사 골프'를 없앴다. 노조와 회사 간부들은 금요일마다 친목 도모 차원에서 골프를 즐겼는데, 그의 눈에는 이 골프가 유착관계의 상징으로 비쳐졌다. 64년 루이스빌 포드 새시조립공장에서 첫 발을 디딘 게텔핑거는 주경야독으로 대학을 마쳤다. 과거 위원장들이 회사를 윽박지르는 선동가형 지도자라면 그는 치밀한 전략가로 분류된다. 그의 합리주의 정신은 인디애나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것과 무관하지 않는 듯하다. 실제로 그는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에 회사 재무자료를 철저히 분석한다. 회사의 손실이 경영실패로 인한 것인지, 노조의 생산성 약화에서 연유한 지를 따져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뉴욕 월가의 애널리스트와 회계전문 변호사를 고용했으며, 월가의 은행으로부터도 자문을 받고 있다. 그는 UAW 강경파로부터 회사측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번 합의안이 대의원 회의에서 거부당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미 자동차 산업 경쟁력이 회복돼야 일자리가 보장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물론 노조원 상당수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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