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0시. 정부는 일본에 또 하나의 빗장을 풀어준다. 일부 수입선다변화(일본제품 수입금지)품목을 해제하는 것이다.이번 수입선다변화품목 해제를 통해 전면 수입이 개방되는 품목은 캠코더, 스테이션 왜건형 자동차, 지프자동차, 아날로그 시계, 복사기, 도자기, 플라스틱 화스너(지퍼), 자동포장기계등 공작기계,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 카메라, 밀가루 등 모두 32개 등이다.
이에 따라 정부, 관련업계 모두가 내달부터 합법적 절차를 거쳐 급속하게 몰려들 일제(日製)에 대한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의 대응= 정부는 연말에 이어 내년 6월 30일 세단형 승용차, 2.5인치 이상 컬러 TV, 휴대용 무선전화기, 전기밥솥등 나머지 16개 품목도 수입선 다변화품목에서 해제할 계획이다. 지난 78년 대일무역역조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수입선다변화제도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원래 99년말로 예정된 수입선다변화 해제 시기가 6개월 앞당겨진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와의 약속 때문이다.
산업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수입선다변화품목 해제일을 내년초로 하지 않고 31일로 정한 것도 연내에 실시했다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수입선다변화품목 해제로 국내 산업이 받을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IMF영향등으로 국내 경기가 위축되어 있는데다 소비심리가 얼어붙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대일 수입이 당장은 급격하게 늘지는 않을 것이란 진단이다.
정부는 그러나 대기업에 비해 대응능력이 쳐지는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클 것으로 보고 대응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산자부는 이번 수입선다변화 해제품목 관련업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동차, 공작기계, 캠코더등 핵심품목의 신기술개발사업이 조기에 이뤄지도록 기술개발에 대한 지원을 확대키로 했다.
또 원가절감과 생산성향상을 위해 자동차, 굴삭기등 14개 품목의 부품공용화, 표준화사업을 확대 추진할 계획이다.
산자부는 특히 자본재산업의 육성, 중소기업지원, 기술개발촉진 시책과 연계해 국산화비율을 크게 높인다는 전략이다.
산자부는 또 수입선 다변화품목 해제를 계기로 일본에 대해서도 혁제신발및 가공피혁에 대한 관세쿼타제와 같은 대한수입규제적 조치를 철폐해 줄 것을 일본 정부에 요구키로 했다.
이와함께 일본 기업들의 반덤핑공세등으로 국내 업체가 피해를 입을 경우 산업피해구제제도를 활용해 적극 대응해 나갈 예정이다.
◇관련업계 영향 및 대응책= 장기적으로 볼 때 수입선다변화 제도 폐지로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분야는 자동차와 가전 산업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일제 자동차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2000년 3%(4만5,000대)에서 2005년 9.9%(14만9,000대)로 급증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96년말 1.2%에 그치고 있던 전체 수입차 시장점유율도 2005년엔 12.9%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업계는1,500CC이상 지프형 자동차가 수입선다변화품목에 포함됨에 따라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갤로퍼, 스포티지, 무쏘등이 일본제품과 무방비상태에서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갤로퍼를 생산하고 있는 현대정공의 경우 기술제휴한 미쓰비시사의 「파제로」모델이 갤로퍼와 같기 때문에 진짜제품을 이겨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중소기업계는 이미 비상이 걸린 상태다.
도자기 업계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노리다케사의 저가공세를 우려하고 있다. 일본 도자기의 대표주자격인 노리다케사는 이미 국내 유통망을 확보하고 대대적 홍보를 준비하고 있다.
시계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이 70년대 유럽에 진출할 때와 같이 저가공세로 나올 경우 국내 시계산업은 급속하게 잠식당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일본시계는 유럽에 진출해 무차별 저가공세로 세계적 명성을 가진 스위스시계를 한 때 누른 적이 있다.
관련업계는 이제 일본제품으로 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막을 잃어버림에 따라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밖에 없게 됐다. 【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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