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특파원이 본 평양] 햄버거 인기 끌고 고급식당엔 BMW… 곳곳 민간경제 스며들어

200弗 넘는 휴대폰 일상화… 프로레슬링 촬영 모습도
외부정보 통제 어려워졌지만 주민들 가슴마다 김일성 배지
김씨왕조 개인숭배 변화없어

북한에서도 햄버거와 BMW 같은 외제차가 주민들에게 인기를 끄는 등 민간경제가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2일 최근 5일간 평양을 방문한 사이먼 먼디 서울특파원의 르포 기사를 통해 북한 곳곳에 자리잡은 민간경제의 실상과 변화를 상세히 조명했다.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리모델링 후 재개장한 평양의 문수물놀이장 패스트푸드바에서는 햄버거 1개가 북한 돈 1만원(약 76달러)에 팔리고 있다. 일반 북한 노동자 월급의 3~5배에 해당하는 가격이다. 입장료 2만원을 내고 들어왔다는 트럭운전수 량광진(39)씨는 수영장에서 활기차게 노는 다른 가족 단위 물놀이객들과 마찬가지로 비싼 가격에 동요하지 않았다고 먼디 특파원은 전했다. 문수물놀이장을 찾은 수백명의 인파 중 얼마나 많은 인원이 비싼 정가를 다 내고 들어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시설은 북한에서도 민간경제가 생활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FT는 분석했다.

소매가가 200달러부터 시작하는 휴대폰도 북한에서 일상화됐다. 지난주 말에 열린 프로레슬링 경기에서 몇몇 관람객들이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고 먼디 특파원은 전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 주민들이 주로 사용하던 휴대폰은 중국산이었지만 지금은 아리랑 등 자국산으로 대부분 대체됐다. 다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아리랑 휴대폰은 다른 스마트폰과는 달리 인터넷 접속이 되지 않는다.

자동차 보급의 확산도 민간경제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평양에서 유일하게 옥외광고를 하는 회사이자 한국의 통일교그룹과 합작한 평화자동차가 가장 눈에 많이 띄었지만 일본 차와 폭스바겐·벤츠 등도 보급돼 있었다고 먼디 특파원은 소개했다. 또 평양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고급 국수식당 주차장에서는 최신 BMW가 주차된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북한에서는 1990년대에 발생한 대기근 이후 비공식 시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지금은 전 주민의 3분의2가량이 비공식 시장으로부터 생필품을 조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정부가 외부 정보를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도 눈에 띈다. 과거 북한 정부는 한국은 가난하고 국민들은 짐승처럼 잔인하다는 잘못된 정보를 퍼트렸지만 최근 외부 정보 유입을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자본주의가 한국의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빈부격차 심화가 현재 북한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문수물놀이장과 미림승마장 등 인민들을 위한 위락시설들이 생겼지만 아직 대다수의 북한 주민들은 살기 팍팍한 상태다. 지난해 세계식량계획에 따르면 북한 인구의 16%만이 '충분한 음식 섭취'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에도 한 가지 바뀌지 않는 것은 북한의 김씨 왕조에 대한 개인숭배다. 먼디 특파원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부친인 고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조부인 고 김일성 주석의 사진은 평양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었고 모든 주민들도 이들의 사진이 새겨진 배지를 달고 다녔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의 사진은 매일 노동신문 1면의 동정 기사 옆에서 볼 수 있다.

올해 31세인 김 위원장은 재미 없고 음침한 이미지였던 그의 부친과는 대조적인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노력해왔다. 그의 이런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는 스포츠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FT는 전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내에 고급 스키리조트를 개장했고 미국 농구스타인 데니스 로드먼을 두 번이나 초청하기도 했다. 지난주 말에는 외국의 레슬링 선수들을 평양으로 초청해 역시 레슬링 선수 출신인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키 의원이 주관하는 레슬링 토너먼트 경기도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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