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50돌 영도벨벳 류병선 회장 "고객 니즈 발굴, 재기 성공했죠"

[창간 기획] 한국의 장수기업


경북 구미공단의 영도벨벳 본사를 방문하면 실내 인테리어가 유독 눈에 띈다. 벽면을 벽지대신 벨벳 섬유로 치장한 것은 물론 쇼파와 바닥도 벨벳으로 멋을 내 유럽 부호들의 대저택을 연상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벨벳을 의류소재로만 알고 있는데 실은 쓰임새가 다양합니다. 고객의 니즈에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객의 니즈를 개발해 찾아주는 것도 회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고급 섬유인 벨벳 하나로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영도벨벳의 류병선(70ㆍ사진) 회장은 "기업은 고객보다 한발 앞서 항상 연구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에는 고품질 섬유도 많이 나와있지만 벨벳은 아직도 최고로 손꼽히는 섬유 중의 하나다. 과거 일제시대 때부터 이른바 '빌로도'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섬유로 일제 이후 60~70년대까지도 일반인들에게 의류용으로 널리 보급됐다. 요즘에는 워낙 고가인데다 다른 좋은 섬유들도 많아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하지만 아직도 부유층 등 일부에서는 애용하고 있다. 세계적인 벨벳 생산업체인 영도벨벳은 지난 60년 유회장의 남편인 고 이원화 사장이 대구에서 메리야스 제조공장으로 처음 창업했다. 창업자인 이사장은 지난 95년 구미공단으로 이전하면서 전량 수입에만 의존하던 벨벳을 국산화해 수출로 세계시장을 석권하겠다며 최신형 직기 150대를 갖추고 제품 개발과 생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세계 최고를 지향한 이사장의 야심은 2년 뒤인 97년에 닥친 IMF 사태로 좌절을 겪어야 했다. IMF 전만 해도 800원대에 불과하던 원달러 환율은 갑자기 2,000원대까지 치솟았다. 이로인해 달러로 직기를 구입하면서 발생한 100억원대의 부채는 순식간에 300억원대로 불어났다. 경기는 곤두박질해 판매가 추락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부채상환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견디다 못한 이사장은 지난 2002년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가정주부였던 부인 류회장까지 회사에 출근시켜 경영에 힘을 보태게 했다. 이후 영도벨벳은 4년만인 2006년 워크아웃을 졸업했지만 그 이튿날 이사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비운을 맞았다. 전격적으로 회사경영을 이어받은 류회장은 기존 의류에 머물던 벨벳의 사용영역을 대대적으로 넓히면서 시장확대에 나섰다. 쇼파커버, 침대커버, 요와 이불 재료 등 연구를 할수록 쓰임새는 무궁무진으로 넓어졌다. 이에 힘입어 매출도 크게 늘어 지난해에는 350억원을 기록했다. 올초에는 그동안의 회사 성장을 이끈 200여명의 직원들에게 150%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등 내부고객 만족에도 힘을 썼으며 이를 바탕으로 올해에는 45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예정이다. 영도벨벳은 최근 6년여의 연구 끝에 세계적으로 일본이 독점해오던 벨벳을 소재로 한 'LCD러빙포'를 독자기술로 개발해 납품에 들어갔다. 이 부품은 휴대폰과 TV, 모니터 등에 들어가는 LCD의 화질을 더욱 선명하게 하고 제품 수명을 길게 해주는 부품이다. 영도벨벳은 이 부품을 개발한 뒤 그동안 일본 부품만을 사용해오던 애플사 등 세계 유명회사들에수출하는 것은 물론 국내사에도 납품을 시작하면서 기존 사업 외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했다. 류회장은"사람이나 회사나 모두 호황이라고 방심해서는 안된다"며 "영도벨벳은 50년 전 창업때의 초심을 잊지 않고 항상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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