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정 탄생 300주년 기념 특별전

8m 넘는 산수화에 '조선 남종화' 혼백이… '촉잔도권'등 100여점 간송미술관서 선봬

촉잔도권

자국괴석

조선 영조 44년(1768년) 8월. 당대 이름을 떨치던 화가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1707~1769)은 자신의 화업(畵業)을 정리해야 겠다고 마음을 먹고 방안에 틀어박혀 평생 수련했던 화법으로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독학으로 연마한 화법으로 수십여일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 탄생한 그림은 8m가 넘는 대폭 산수화인 ‘촉잔도권(蜀棧圖卷)’. 중국전통화인 남종화의 시조 오도현과 북종화의 시조 이사훈이 처음 그렸다고 전해 내려오는 촉잔도권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자연경관을 산수화로 그려낸 두루마리 그림이다. 당시 62세 였던 현재는 한 폭의 거대한 그림에 그의 혼백을 불어넣고 이듬해 조용히 생을 마쳤다. 현재 심사정은 중국의 남종화를 바탕으로 조선 고유의 화풍을 완성시켜 겸재(謙齋) 정선(1676~1759),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石 1686~1761)과 함께 조선후기 사대부 출신 화가를 대표하는 문인화가로 꼽힌다. 올해는 그가 탄생 300주년.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이를 기념하기위해 ‘현재 심사정 탄신 300주년기념 현재화파전’을 14일부터 시작했다. 현재는 그의 할아버지 심익창이 숙종 25년 실시된 과거시험에서 부정을 저지르다 발각돼 10여년간 귀양살이를 하는 바람에 역적의 자손으로 몰려 제대로 공부할 기회을 얻지 못했다. 사대부집안의 지식임에도 불구하고 평생 과거시험을 치를 수 없었던 그에게 그림은 숙명이었다. 그림도 제대로 배울 수 없었던 현재는 중국에서 건너온 화집을 보고 독학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남아있는 그의 초기 작품은 중국 남종화의 모습을 닮아있다. 현재의 그림이 환골탈퇴하는 계기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40대 후반 금강산여행에서 진경 산수화를 그리면서부터다. 먹의 번짐 현상이 미덕이었던 중국의 남종화에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기법 이른바 골기(骨氣)가 들어가기 시작한 것. 화집 따라 그리기로 시작한 그는 50대에 접어들면서 ‘조선남종화’라는 새로운 화풍을 완성하는 경지에 이른다. 암울했던 어린시절 그림에서 돌파구를 찾았던 그는 말년에 이르러 제자들과 후배들을 거느리며 ‘현재화파’를 형성하게 된다. 전시에는 남종화를 답습했던 현재의 초기작부터 평생의 화법을 쏟아부었던 마지막 작품 ‘촉잔도권’ 등 100여점이 나온다. 특히 촉잔도권은 70년대 간송미술관에서 처음 소개된 이후 30여년 만에 관람객에게 선보이게 된다. 그밖에도 그의 화풍에 영향을 받았던 김희겸, 강희언, 이광사, 윤용 등 조선후기 문인들의 작품도 함께 소개된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실장은 “조선 3대 문인화가 중 한 사람인 현재에 대한 연구가 미흡한 탓에 탄생 300주년임에도 그를 기억할 만한 행사가 부족해 아쉽다”며 “그의 작품에는 유라시아 문화가 중국을 거쳐 조선에서 완성된 당시 문화적인 특성이 그대로 살아있어 조선시대 미술의 핵심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28일까지. (02)762-0442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