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부 시절도 이러지는 않았다. 은행과 일언반구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밀어 부치는 건 도대체 무슨 꿍꿍이냐.”(A은행 임원) 한나라당 서민대책특별위원회와 은행연합회가 지난 29일 합의한 ‘은행 영업이익 10% 서민대출 할당‘ 방안을 놓고 은행들이 집단 반발할 기세다. 저소득ㆍ저신용계층을 돕자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부작용이 우려되는 정책을 강행하는 여당과 회원사들과 사전 조율 없이 덜컥 정책에 합의해버린 은행연합회에 대해 ‘돈주머니’역할을 떠맡을 처지인 은행들이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은행권 “정부가 해야 할 일”=은행들은 이번 대책이 발표된 직후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은행연합회가 정부 방침에 부응하는 정책을 내놓을 때에는 사전에 실무자 및 담당 임원 차원의 전담팀을 구성해 정책의 구체적인 방향과 실행 내용 등을 조율하는 게 그 동안의 관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연합회가 회원 은행들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서민 대출 할당 방안을 발표해놓고 관치 논란이 일자 ‘은행 자율에 맡긴다’며 발을 슬쩍 빼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각 은행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른 채 덤터기를 뒤집어 쓴 꼴이 됐다. 한 대형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서슬이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에도 최소한 은행장들과 사전에 의견을 드는 요식행위라도 거친 뒤 정부의 금융정책이 발표됐다”며 “이번처럼 은행들도 모르게 여신정책이 발표된 것은 군사정부 시절에도 없던 일”이라며 “은행연합회가 관변단체냐”고 꼬집었다. ◇서민대출 법제화도 위헌논란=이번 10%할당안과 관련, 질타의 대상으로 떠오른 은행연합회 측은 ‘여당의 서민대책특위가 서민대출 지원을 강제하는 법안을 입법화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입장이다. 손놓고 있다가 법제화되면 더 큰일이라는 인식아래 ‘자율적 움직임’으로 강제력을 좀 느슨하게만들려는 의도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홍준표 시민대책특위 위원장은 이 같은 내용의 입법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비쳐왔다. 하지만 특위가 이를 강행해도 입법 실현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우선 위헌 논란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기업의 이익을 운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주들의 대표기관인 이사회와 주주총회의 권한이다. 이런 이유로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내 일부 의원들도 대출 할당 방안의 법제화에 반대하고 있다. 은행 주변에선 “법제화를 피하기 위해 은행 자율 대책을 발표했다는 연합회측 주장은 넌센스”라고 일축한다. ◇다음주초가 고비될 듯=연합회는 오는 10월 4일 은행장들의 회동 후인 다음주초 이번 대책의 실천을 위한 최종안이 나올 것을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은행들의 반발이 거세 합의가 쉽게 이뤄질 지는 불투명하다. 우선 재원을 마련하기가 만만찮다. 은행권이 이번 대책을 수용할 경우 연간 1조원 안팎의 자금이 서민대출용 재원으로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주요 은행들은 이미 또 다른 서민대출사업인 미소금융에 향후 10년간 총 1조원의 자금을 출연하기로 한 상태다. 이에 앞서 지난해 3월 도입한 희망홀씨 대출로도 현재까지 35만명에게 총 2조3,000억원 이상을 지원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은행 영업이익의 10%를 넘어서는 지원을 한 셈이다. 따라서 여기에 더해 추가로 서민대출용 자금을 내놓는 다는 것은 은행들로선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해당 서민대출이 부실화됐을 경우에 이를 어떻게 처리할 지도 은행들에게 부담거리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들에게 무조건 돈만 내놓으라고 해서 서민대출이 활성화 되는 것이 아니다”며 “은행들이 출혈에 따른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리스크 방지책과 인센티브가 함께 주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영필기자 susopa@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