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 부지선정 고난의 역사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건립사업은 20여년간 논쟁과 대립, 추진과 포기가 반복된 난제중의 난제였다. 방폐장 부지선정 작업은 1986년부터 시작돼 안면도, 굴업도, 영광, 울진 등을대상으로 9차례 추진됐으나 모두 실패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78년 첫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이래 폐기물 처리를 놓고 고심하던 정부는 84년원자력위원회 회의를 통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원전부지 외부에 건설한다는 정책방향을 마련하고 86년5월 한국원자력연구소를 위탁기관으로 지정했다. 과학기술처를 주체로 진행된 부지선정 작업은 88년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 중장기계획 확정 이후 본격화됐지만 89년 경북 영덕, 울진 등에 대한 부지조사가 주민반대로 중단되면서 지난한 역사의 첫 단추를 꿰기 시작했다. 90년 11월에는 안면도가 후보지로 선정된데 반발해 무력시위가 일어났고 이로인해 당시 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이 물러났다. 93년에는 전남 장흥이 적정지로 거론되다가 무산됐다. 94년 5월에는 울진군 기성면 찬성측 주민들이 2천여명의 서명을 받아 처음으로자율유치 신청을 했지만 반대측 주민들이 국도를 점거하고 초중고생 1만여명이 등교를 거부하는 등 소동끝에 부지선정 작업은 다시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정부는 94년 12월 인천 옹진군 굴업도를 최초로 방사성폐기물관리시설 지구로지정, 고시하고 이듬해 부지특성조사에 착수하면서 주변지역 지원을 위해 특별지원금 500억원을 출연, 덕적복지재단을 설립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강도높은 반대투쟁이 벌어졌고 정부의 정밀지질조사 및 환경평가 과정에서 활성단층이 확인돼 지정고시가 해제되고 말았다. 결국 97년부터 주관부처와 근거가 과기부와 원자력법에서 산업자원부와 전기사업법으로 바뀌고 수행기관도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한국전력으로 넘어갔다. 주체가 바뀐 뒤 2000년 6월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유치공모를 실시, 영광,고창 등 7개 지역에서 유치청원이 이뤄졌지만 지자체가 주민 갈등 심화 등을 이유로이를 거부했다. 정부는 2001년 7월 사업방식을 사업자주도 방식으로 변경, 후보부지 선정을 위한 용역을 벌여 2003년 2월 영덕, 울진, 고창, 영광 등 4곳을 후보지로 추천했으나. 다시 반발이 거세져 실패했다. 참여정부 출범 후 방폐장 부지선정 작업은 사업자 주도 방식에서 지자체 자율신청 방식으로 전환됐고 양성자 가속기 사업 등 막대한 지원도 약속됐다. 이 결과 2003년 부안군수가 유치를 신청해 위도를 후보부지로 선정했으나 반대주민과 환경단체의 지속적인 반대투쟁으로 극단적인 폭력사태가 발생하면서 부지 선정이 무산됐다. 결국 부지유치를 주민의사에 맡기자는 결정에 따라 2004년 주민참여적 부지선정절차가 새로 마련됐으나 기한안에 유치신청 지자체가 나오지 않아 부지선정에 다시실패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사용후 핵연료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분리해 처분하고 유치지역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새로운 방폐장 부지선정절차를 마련해 올해 6월 공고했고 경주, 군산, 포항, 영덕 등 유치를 신청한 지자체의 주민투표로 이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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