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아낙들이 두런두런 모여있는 가운데 춘향끌고 가자 아줌마들 난리다.아낙1:하늘이 내린 열녀 매친다고, 회절하오리까?
아낙2:어사또, 서울놈 이몽룡인가 개몽룡인가 하는 의리없고 사정없는 그 호로자식놈 땜에 일어난 일이니 그놈부터 잡아다 주릿대경을 치시오.
아낙3:제 낭군 수절한다고 형장 때려 옥에 가둔놈은 아무 죄없고 그래 춘향 관청발악은 대단한 죄던가.
지난 18일 오후 경기도 용인 민속촌에서 이뤄진 영화「춘향뎐」의 마지막 촬영분의 한 대목. 옥에 갇혀있던 춘향을 어사또가 끌어오라하고, 이에 화가 난 동네 아낙들이 몰려들어 한마디 쏘아붙이는 장면이다.
여자 보조 출연자 70여명이 모인가운데 엑스트라 아낙1,2,3들은 마지막 촬영이라는데서 오는 안도의 흥이 나서였는지, 주변 관광객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한번의 재촬영도 없이 일사천리로 실감난 연기로 마무리했다.
정일성 촬영감독과 눈인사를 나눈 임권택 감독은 특유의 표정(웃는것도 아니지만 화내는 모습도 아닌)으로 『수고들 했어. 다음주 촬영장에서 봅시다.』며 스탭들과 엑스트라들에게 주변정리하라며 한손을 흔들었다. 이어서 70여명에 가까운 스탭들은 『어휴』라며 카메라와 소품들을 정리하고, 주연 춘향(이효정) 몽룡(조승우) 변학도(이정현) 월매(김성녀) 향단(이혜은) 방자(김학용)등 주연과 엑스트라 100여명은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서로를 쳐다보며 수인사를 나누는 따뜻함을 보였다.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용인 민속촌에서 이어진 「춘향뎐」의 촬영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춘향과 몽룡의 감격적인 재회 장면을 비롯해 어사또 앞으로 끌려 들어오는 춘향, 춘향 혼절하고 상방으로 옮겨지는 모습, 큰소리치며 동헌으로 들어오는 월매 모습등이 그려졌다.
「춘향뎐」은 그동안 남원 광한루와 춘향골등지에서 사랑가, 도임길, 십장가(변학도의 수청을 거절하고 고문을 당하는 춘향), 변학도의 생일잔치 등을 마쳐 90%의 촬영 진척을 보였다.
「춘향뎐」촬영장에는 인간문화재 조상현씨의 판소리 「춘향가」가 쉴새없이 흘러나온다. 이 판소리는 바로 영화「춘향뎐」의 시나리오고 내레이션이고 음악이기때문이다. 영화「춘향뎐」의 판소리는 소재나 효과에 그치지 않고 영화의 질감과 톤과 리듬까지 결정한다.
「춘향뎐」은 판소리와 영화가 한몸이 됐다는 의미에서 판소리영화이고, 영화 판소리다.
임권택 감독은 한국의 전통예술을 영화라는 근대적 매체로 번안하면서, 그의 영화이력에서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실험적인 형식을 시도하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는 판소리의 이야기를 쫓고, 숏은 1초단위로 계산돼 판소리의 리듬을 쫓는다. 재촬영을 해야하는 이유는 하나 더 늘어나게 된다. 약간이라도 판소리와 동작의 리듬이 어긋나면, 임감독의 입에선 『다시』가 터져나온다.
정적미의 대가였던 정일성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판소리 가락을 따라 곡선을 흘러간다. 스탭들은 「춘향뎐」이 「레일의 영화」라고 말한다. 카메라가 거의 멈춤없이 레일과 크레인 위에서 유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70명에 이르는 대규모 스탭들 대부분이 손쉴 틈 없다. 백전노장 정일성 촬영감독에게도 이건 그의 생애에서 「가장 까다롭고 복잡한」작업이다. 내년 설날 개봉예정이다.
박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