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자본주의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도시민들이 직업을 3~4개씩 가지며 돈 벌이에 열중하는 일이 흔해졌다. 중국 베이징의 최대번화가인 왕푸징거리에 시민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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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향해 달려라(向錢看·샹치앤칸)'
랴오닝(遼寧)성의 지방공무원인 새내기 주부 쑨링(孫玲ㆍ여ㆍ25).
그녀는 매일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난다. 시청 출근에 앞서 외국인 학생들을 상대로 새벽반 중국어 강의를 하기 위해서다. 그녀는 퇴근 후에도 자동차와 보험 세일즈를 하고 있으며, 주말에는 초등학생 10여명을 모아놓고 영어와 수학을 가르친다.
랴오닝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그녀는 주업인 시공무원말고도 줄잡아 4~5개의 부업을 갖고 휴일도 잊은 채 분초를 나눠가며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 5년 안에 중대형 아파트를 장만하는 것이 목표”라는 그녀는 “중학교 교사인 남편도 여행가이드와 소설 번역 등으로 돈 벌이가 괜찮아서 잘 하면 목표를 앞당길 수도 있을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인생 목표ㆍ직업 선택 ‘판단기준은 돈’= 중국의 청와대 격인 중난하이(中南海) 입구에는 ‘爲人民服務(인민을 위한 봉사)’라고 쓰여진 커다란 현판이 걸려있다. 요즘 중국인들은 이 현판의 ‘人民’을 ‘人民幣’로 쓸쩍 바꿔 ‘돈을 위한 봉사(爲人民幣服務)’라고 부른다. 정부 관료들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지금 중국은 정부와 국민들이 일체가 되어 돈을 향해 달리고 있다.
최근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 신랑(新浪ㆍsina.com.cn)이 광둥(廣東)성에서 발간되는 주간지 신주보(新週報)와 공동으로 실시한 인생의 10대 희망을 묻는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돈 벌기’를 꼽았고, 해외여행ㆍ부국강병ㆍ호화승용차ㆍ호화저택 등이 뒤를 이었다.
직업선택의 기준도 ‘돈’이다. 중국의 취업전문 인터넷사이트인 ‘랴오닝인재정보망’이 취업을 앞둔 중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결과, 대학생의 40%가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라고 답했다. 반면 자아실현을 직업선택의 최우선 요건이라고 응답한 중국 대학생은 23.2%에 그쳤다.
중국인들은 돈 버는 수단과 방법을 크게 중시하지 않는다. 지난 5월 공자묘를 이용한 상술이 대표적인 사례. 중국 2대 공자묘(孔子廟)로 꼽히는 지린(吉林)성 문묘(文廟) 관리소는 “공자에게 첫 향을 올리는 기회를 드립니다. 가격은 9,999위안(약 130만원)”이라는 광고를 냈다. 대학 입시를 한달 앞두고 학생과 학부모에게 매일 아침 첫 향을 올리게 해준다는 내용으로 중국인들에게는 종교도 상술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더불 잡(Double Job)은 기본, 포 잡스(Four Jobs)도 많다’= 베이징대학 법학과 석사학위를 밟고 있는 왕밍(王明ㆍ남ㆍ27)은 “중국의 경제성장이 가속화하면서 돈이 모든 가치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덩샤오핑(鄧小平)은 개혁개방을 표방하면서 ‘샹치앤칸(向前看ㆍ미래를 내다 보자)’을 외쳤는데 요즘 중국인들에게는 ‘샹치앤칸(向錢看ㆍ돈을 향해 뛰자)’으로 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왕밍은 “현대 중국인들은 투 잡스는 기본이고 많게는 4~5개의 부업을 갖고 있는 사람도 흔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물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지만, 중국 근로자들의 임금이 낮고 직장이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영기업 종사들의 경우 오후 5시 퇴근이 확실하게 보장되면서 저녁 시간을 활용해 소자본 창업이나 과외, 컨설팅, IT사업 등을 겸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하이 소재 국영기업의 부장급인 장용빈(張勇彬ㆍ남ㆍ36)은 무역관련업을 병행하며 매월 200만원의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는 “중국무역업체의 계약 직원으로서 주로 한국회사와 관련된 석유화학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며 “본업보다 부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이 더욱 짭짤해 앞으로 더 많은 업체들과 접촉하기 위해 프리랜서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직업연구기관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중국인들이 종사하고 있는 부업 종류의 경우 판매업이 전체의 29%를 차지해 1위에 올랐다. 이어 과외가 18%를 차지해 적은 자녀수로 인한 사교육 지출이 늘면서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사이드잡(side job)으로 나타냈다. 이밖에도 각종 조사, 번역, 가이드 등도 현지에서 인기 부업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정상은 삼성경제연구소 중국연구실 수석연구원은 “중국에서는 직장인들이 부업을 갖는 것은 ‘개인 경쟁력’으로 인식되면서 상당히 활성화돼 있다”며 “이는 자본주의가 가속화되면서 사회적으로 돈을 중요시하는 환경과 많은 교육비, 노후 대비 등 사회적 환경이 크게 작용한 탓”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