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새해 첫날인 1일 오전에서야 비로소 2013년도 예산안을 처리했다. 국회가 법정처리 시한(12월2일)을 넘기는 지각처리는 10년째 되풀이됐지만 해를 넘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여야는 5년 만의 합의처리에 나름 의미를 두는 모양이지만 당략으로 나라 살림살이의 발목을 잡는 구태를 답습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산처리가 지연됐다고 해서 예산심의를 밀도 있게 진행한 것도 아니다. 이른바 '당선인 예산' 규모와 제주해군기지 예산을 둘러싼 소모적 신경전으로 해를 넘겨버렸고 막판 시간에 쫓겨 각 항목의 총액만 떼고 붙이기 한 것에 불과하다.
국회가 밥 먹듯이 예산안을 지각 통과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복지예산 100조원 시대가 초래할 파장은 더 걱정거리다. 국회가 확정한 새 정부 첫해 나라살림은 342조원으로 정부안보다 5,000억원 줄었으나 이 중 복지예산 규모는 어림잡아 103조원에 이른다. 전면 무상보육 같은 대선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복지지출을 대폭 늘린 탓이다. 복지예산 비중이 전체의 30%에 해당하니 선택적 복지를 넘어 보편적 복지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결코 무리는 아니다. 더구나 내년부터는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지원 같은 추가 복지지출 요인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하나같이 조 단위의 엄청난 재원이 필요한 사업들인데 어떻게 이런 복지예산을 뒷받침할지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저성장이 고착화할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당장 우려되는 것은 재정적자 확대다. 새해 예산안은 4% 성장을 전제로 짠 것이지만 정부조차 올해 성장률을 3%로 수정할 정도로 경제여건은 녹록하지 않다. 인천공항을 비롯한 공기업 민영화 작업마저 지지부진한다면 세수에 더 큰 구멍이 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재정의 경기조절력이 떨어지는 것은 불문가지다. 대안으로 꼽히는 증세를 통한 재원마련도 지금과 같은 경기둔화기에는 선택하기 힘든 카드다.
복지비용 증가는 사회안전망 확보와 민생 차원에서 불가피한 일이지만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이다.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점진적으로 늘려야 지속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무턱대고 공약실천 의욕을 앞세우기보다 엄중한 현실부터 직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