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수직구조로 굳어져있는 전력산업과 가스산업이 곧 경쟁체제로 전환된다.재벌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않기 위해 에너지대표기업으로 자리를 굳히기 위한 각축전에 돌입했다.
국제시세와는 상관없이 비현실적으로 억눌려졌던 에너지가격은 정부의 에너지가격개편에 따라 현실화될 전망이다.
요약하자면 정부가 규제하던 에너지산업에 시장기능이 도입되는 것이다.
국내 에너지가격은 그동안 금융과 더불어 가장 심한 정부통제를 받아온 게 사실이다. 이에따라 에너지정책은 시장실패 이전에 정부실패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인위적인 저 에너지가격 유지로 직접적인 사적비용과 간접적인 환경오염등 외부비용이 에너지 가격에 반영되지 못해 소비를 부채질했다.
특히 산업용, 수송용 경유등 주요 에너지 가격이 왜곡되어 대기환경오염이 심화되는 악순환을 거듭해왔다.
최근까지만해도 국제 원유가가 오르면 전국민적인 절약 캠페인이 벌어졌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달라진다. 기름을 아끼자는 대국민 호소는 사라진다.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시장기능활성화에 초첨이 맞춰지고 있으며 소비자들의 에너지소비도 자발적으로 합리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최근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5차 국가에너지절약추진위원회에서도 강조됐다.
독점 에너지기업의 민영화와 에너지가격 현실화로 압축되는 에너지산업의 변화상은 지각변동이상의 파고를 몰고올 전망이다.
◇불꽃튀는 재벌들의 싸움 =변화는 에너지산업을 선점하기 위한 재벌들과 해외메이저들의 각축전에서 가장 먼저 감지되고 있다.
종합에너지기업을 꿈꾸고 있는 LG와 SK는 현재 한전과 지역난방공사가 내놓은 안양·부천 열병합발전소 매각에 참여해 불꽃튀는 접전을 벌이고 있다.
가스공사의 한 관계자는 『올초부터 국내 재벌들과 해외 메이저들의 다툼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뜨겁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정부의 가스공사 지분은 약 27%정도가 남았는데 내년부터 재벌들의 지분확보전이 불을 뿜을 것같다』고 전망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등 노동계의 거센 반발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전력산업도 인수경쟁의 한 가운데에 서있다.
자산규모 62조원의 한전은 앞으로 6개의 발전자회사로 분리된다. 한전에 자회사로 남게 될 원자력부문을 제외한 5개 수화력발전회사는 단게적으로 민영화될 계획.
이들 5개 발전자회사는 해외메이저와 재벌들의 타킷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외 메이저간의 인수합병이 활발한 최근의 추세는 국내 에너지산업의 판도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예전과는 달리 메이저들은 석유, 전력, 가스 등 모든 에너지부문을 통합 운영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지적이다. 과거처럼 석유전문기업, 전력전문기업등의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종합에너지기업의 영토가 넓어지는 경향이다.
에너지산업의 민영화는 세계적인 추세여서 거스를 수도 없는 형편이다.
거대화를 노리는 해외 메이저들과 종합에너지기업을 노리는 국내 재벌들의 양보없는 에너지 공기업인수전은 볼만할 것이다.
◇에너지 소비행태도 변한다 = 에너지산업에 시장기능이 도입될 경우 기업들과 일반 소비자들의 에너지소비행태에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싼 값을 지불하던 기업체들의 타격은 불보듯 뻔하다. 이에따른 기업경영의 급변도 쉽게 점쳐볼 수 있다.
기업들은 그동안 제품원가에 에너지요인을 별로 고려치 않았던 게 사실이다.
정부가 성장위주의 산업정책을 펼쳐오면서 기업들에게는 상당히 싼 값이 전력, 가스등을 공급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절약하지 않는 기업은 경쟁력 상실을 감수해야 한다.
일반 소비자들도 높은 에너지 비용을 피하기 위해 절약을 생활화해야 할 것이라고 정부의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NP) 1,000달러당 에너지소비량이 일본의 2.27배, 미국의 1.37배에 달하고 있다. 전형적인 에너지 과소비형 사회다.
에너지관리공단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나 일반 소비자들이나 이제 에너지절약은 선택이 아니고 반드시 실천해야 할 의무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유가시대에 대비할 때다 = 국제적으로 논의가 한창인 기후변화협약은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발등의 불이다.
지구환경보호를 빌미로 후진국들의 목을 죄고 있는 선진국들의 그린라운드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넋을 놓고 있다가는 몇 년후 공들여 만든 제품의 수출길이 완전히 막혀 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선진국들이 환경기준을 맞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수입 차제를 허용하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젠 과거와 같은 저유가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산유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챙기기 위해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단결력을 보여주고 있다. 기름값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일심동체다.
특히 유가상승등 외부충격에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방심할 수 없다. 고유가시대를 준비해야 할 때다.
박동석기자EVERES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