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20m가 넘는 강풍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수천톤짜리 선박이 좌초하고 항공편이 결항하는 등 전국에서 피해가 잇따랐다. 기상청은 서울을 비롯한 내륙 지역은 25일 이후 바람이 잦아들겠지만 해안가나 섬 지역에는 26일까지 강풍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주의를 당부했다.
25일 강원도 속초 설악산에는 초속 26.6m의 강한 바람이 불었다. 기상청 특보발령 기준 가운데 가장 높은 '매우 강함' 기준인 초속 14m를 훌쩍 웃도는 속도다. 인천시 백령도에는 24.9m, 경기도 김포에는 15.0m의 세찬 바람이 불었다. 25일 정오 현재 서해5도와 강원도ㆍ전라남도ㆍ흑산도ㆍ울릉도 등에는 강풍경보가 내려진 상태다. 전날인 24일에도 제주도 고산에서는 초속 23.7m, 인천 16.0m 서울 9.4m에 이르는 강한 바람이 불었다.
갑작스런 강풍의 원인은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는 과정에서 차가운 고기압과 따뜻한 저기압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허진호 기상청 통보관은 "두 기압의 온도 차가 클수록 바람이 강해지는데 비교적 따뜻하고 습기가 많은 저기압이 중국 남부를 거쳐 우리나라로 유입되면서 북쪽에서 점차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차가운 대륙고기압과 만나 많은 비를 내리고 강풍도 일으켰다"며 "완연한 겨울이 되기 전까지는 이번 같은 강풍이 다시 우리나라에 불어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세찬 바람에 바닷길과 하늘길은 막히고 선박이 좌초하는 등 각종 사고가 이어졌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해안가다. 25일 오전1시47분께 울산시 동구 슬도에서 2.5㎞ 떨어진 해상에서 중국 선적 4,675톤급 벌크선 'ZHOU HANG 2호(승선원 17명)'가 안전지대로 대피하던 중 강풍에 밀려 연안에 좌초됐다. 2시30분께는 파나마 선적 7,675톤급 석유제품운반선 'CS CRANE호(승선원 18명)'가, 3시55분께는 우리나라 석유제품운반선인 2,302톤급 '범진 5호(승선원 11명)'가 잇따라 바람과 파도에 밀려 좌초됐다. 오전2시30분께는 부산 남외항 태종대 앞바다를 운항하던 129톤급 예인선과 5,000톤급 바지선이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좌초됐다. 오전0시40분께는 부산 5부두에서 출항하는 화물선에서 밧줄을 푸는 작업을 하던 전모(65)씨가 미끄러져 바다에 추락해 병원 치료 중 숨졌다.
이날 경남 창원시 진해군 모 조선소 안에서 건조 중이던 해군 고속함 1척도 높은 파도 때문에 물이 차면서 바닷물에 잠겼다. 430톤 규모로 만들어진 최첨단 유도탄 고속함(PKG)은 이 조선소가 해군에 내년 인도할 예정이었다. 조선소 측은 3,000톤급 크레인을 동원해 선체를 물 밖으로 끌어내는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배에 가득 찬 물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전0시50분께는 경남 거제시 아주동 한 공사 현장에 있던 양철 패널이 바람에 날려가 인근 고압선을 덮치는 바람에 이 일대 700여가구에 전기공급이 끊겨 주민들이 1시간 이상 큰 불편을 겪었다. 오전3시10분께에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사리현동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높이 30m짜리 철제 기둥 3개가 강풍에 쓰러졌다.
하늘길을 이용하려던 승객들도 발이 묶였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25일 오전7시30분 광주에서 김포로 향할 예정이었던 항공기 1편을 비롯해 오전7시40분 인천~김해, 오전7시50분 김포~광주, 오전11시5분 김해~인천행 항공기까지 총 4편이 결항됐다.
전날인 24일 오후7시5분 부산에서 출발해 제주에 도착하려던 대한항공 KE1021편은 제주지역의 강한 바람 때문에 오후9시30분 김해공항으로 회항하는 등 제주행 항공기 4편이 결항했다. 또 오후7시35분 김포에서 출발해 제주로 갈 예정이던 티웨이항공 721편을 비롯해 이날 오후9시30분 제주를 오가는 항공편 10편이 결항하면서 관광객들이 발을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