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학상도 거부한 채 오직 원고료만으로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하면서 글을 쓰는 일본의 ‘은둔 작가’ 마루야마 겐지(64ㆍ丸山健二)가 첫 역사 장편소설을 냈다. 구상만 20여년간 했다는 저자는 일본 곤고지(金剛寺)에 소장된 작자 미상의 16세기 작품 ‘일월산수도병풍’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소설은 일본의 장원제도가 붕괴되면서 영주들이 각축을 벌이고 해적이 바다를 위협하던 혼란의 15세기 일본 무로마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섯 폭짜리 병풍 그림을 막 그려낸 여든의 백발노인이 오래도록 살아온 이유이기도 한 필생의 대작을 마치고 자신의 생애 첫 순간을 되살려내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노인의 이름은 ‘이름 없이 커간다’는 뜻의 ‘무묘마루(無名丸)’. 무묘마루는 임신한 어머니가 산적에게 납치됐다가 말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는 순간 태어났고, 곰의 품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목숨을 건진 후 일본도를 만드는 대장장이에게 발견돼 대장장이로 자랐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그는 자신이 만든 ‘풀의 칼’과 양아버지가 만든 ‘별의 칼’을 지니고 복수의 길을 나선다. 무묘마루가 온갖 고난 끝에 마침내 복수에 성공하고 아버지와 재회하는 파란만장한 과정이 펼쳐진다. 영웅소설이나 무협소설에 반복된 고전적인 설정을 유려한 글쓰기로 풀어내는 작가의 글쓰기가 돋보인다. 구두점을 사용하지 않고 단어를 반복하면서 시각적인 문체를 풀어내는 작가 특유의 글솜씨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