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의 제왕’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권좌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한 것을 놓고 고도의 정치적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내년 초 조기 총선이 실시되면 베를루스코니가 컴백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그가 지난 20년간 각종 성추문과 부패 스캔들, 거듭된 신임투표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았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정치적 초강수를 둔 결정이거나 외풍을 피한 뒤 ‘섭정’으로 실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사임 발표를 두고 “20년간 이탈리아를 통치해온 그가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번 사임안 표명은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인 술책일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WSJ가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한 데는 불확실한 이탈리아의 정치적 현실과 그의 막강한 정치ㆍ경제적 배경 때문이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사임으로 이탈리아가 처한 경제위기를 헤쳐나갈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가운데 이탈리아 국민들은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은 관료 출신의 지도자를 원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WSJ는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된 상황에서 이탈리아가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장벽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며 “어쨌거나 신임 총리가 누가되더라도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리더십을 뛰어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언급했다.
1936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베를루스코니는 지난 2008년 세 번째 총리직에 오른 후 무려 51번의 신임 투표를 단행, 질기게 살아남는 저력을 보였다. 건설업으로 번 돈을 바탕으로 방송사와 신문사를 잇따라 사들여 언론제국(메디아세트)을 일궈냈다. 그는 이탈리아 최대 슈퍼마켓 체인과 출판사, 프로축구팀 AC 밀란, 금융회사 등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올 상반기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의 일요판인 선데이타임스가 세계의 200대 부자를 조사한 결과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49억파운드(78억달러)를 소유해 143위를 차지했다.
이 같은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1994년 중도 우파정당인 ‘포르자 이탈리아’를 창당해 단박에 이탈리아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지자에게는 ‘일 카발리에레(기사)’, 미녀들에게는 ‘파피(아빠)’, 영미권 국가들로부터는 위기국면을 잘 빠져나간다는 이유로 ‘태플론 총리’로 불렸다.
섹스파티를 일컫는 ‘붕가붕가 파티’의 창시자로 스캔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재임 기간 동안 수없이 제기됐던 횡령ㆍ분식회계ㆍ뇌물ㆍ조세포탈 등 각종 부패 혐의로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됐고 마피아와 거래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