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Story] 김순응 K옥션 대표이사

"미술도 투자시대… 富의 가치 무궁무진"
"좋아하는 일 하고싶어" 은행 그만두고 과감한 도전
직접 경매사로 뛰며 '솔선수범' 직원들 지지 얻어
미술투자도 전문성 필요… "공부 안하면 백전백패"



성공한 은행원에서 미술품 경매회사 대표로 선회한 김순응(57ㆍ사진) K옥션 대표의 변신은 극적이었다. 논리적이며 숫자 계산이 주를 이루던 업무에서 감성적이며 안목이 중시되는 미술품 거래로 눈을 돌린 것은 과감한 도전이었다. 김 대표는 만 23년을 근무한 하나은행에서 지난 2000년 자금본부장에 올랐다. 한창 잘 나가던 그때 돌연 임원 자리를 버렸다. 수입이나 처우가 꽤 좋았지만 '즐거움'에 목이 말랐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둔 것은 다소 우발적인 결정이었지만 당시 서울경매를 출범한 이호재 가나아트갤러리 회장이 러브콜을 보냈다. "원래 그림을 좋아하기는 했습니다. 윤병철 전 하나은행 회장을 모시고 다니면서 전시를 많이 봤었거든요. 덕분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림을 사 모으기도 했어요. 사표를 쓰면서 당시 김승유 행장에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설명 드렸더니 '자네가 부럽네, 열심히 하게' 하시더군요." 2001년 김 대표는 서울옥션 최고경영자(CEO)로 미술계에 발을 디뎠다. 아무리 미술 애호가라지만 당시로서는 신규사업 분야인 경매회사 사장 자리가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좌절했다. 김 대표는 "감성으로 가득 찬 미술계 사람들은 숫자와 상업 마인드에 너무 무지했다"며 "작품 가격을 얘기하고 블루칩 작가를 논하며 투자가치에 대해 분석하는 것, 즉 작품을 상품과 돈으로, 미술계를 문화산업의 시장으로 말하는 것 자체를 경멸하는 시각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고민 끝에 김 대표는 CEO로서 회사를 이끄는 것과 동시에 경매사업에 대한 대외적 계몽 활동을 결심했다. 그래서 쓴 2003년 '한 남자의 그림사랑'이라는 책은 미술투자 입문서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림을 사고 판다는 얘기를 꺼린다고 하지만 그림을 사줘야 화가든 화상이든 먹고 살아 또 작품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미술품이 중요한 투자자산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일반인들이 너무 모르더군요. 문화 선진국인 외국의 선례가 있었기에 미술품이 투자가치가 있는 자산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피력했습니다." 앞으로 미술투자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내용의 책과 미술시장의 호황이 운 좋게도 맞아떨어졌다. 2007년에는 유사 이래 최고의 호황이라 불릴 만큼 미술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2005년에 신생 경매회사인 K옥션 대표이사를 맡아 현재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K옥션은 갤러리현대와 하나은행이 대주주로 참여했다. 김 대표가 터를 닦은 서울옥션과 새 둥지인 K옥션은 미술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잡았다. 경쟁구도가 껄끄럽기도 했지만 경쟁체제로 건강한 시장을 형성하고 소비자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다는 측면에 우선순위를 두기로 했다. 자본금 30억원으로 시작한 K옥션은 2006년 20억원의 이익을 냈으며 2007년에는 영업이익이 72억여원에 이르렀다. 2008년 금융위기로 전세계 미술시장이 휘청이고 타 경매회사들이 적자에 허덕일 때도 K옥션은 16억원을, 2009년에는 2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그가 직원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방법은 '솔선수범'. 김 대표는 '경매의 꽃'으로 불리는 경매사로 직접 나섰다. 입찰자들의 눈이 쏠린 경매사 자리는 마치 솔로 가수가 홀로 무대를 장악하듯 강한 집중력과 에너지를 요한다. "다른 분 없으십니까, 2억원 하시겠습니까, 2억원, 2억원. 낙찰됐습니다." 소신과 권유가 공존하는 자신감 있는 말투는 일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K옥션이 안정궤도에 접어들자 그는 또 한번 도전에 나섰다. 국내 미술시장의 내수 한계를 절감하고 해외로 눈을 돌렸다. 2008년 11월 일본의 신와아트, 대만의 킹슬리, 싱가포르의 라라사티 등 경매회사와 손잡고 '아시아옥션위크(AAW)'라는 연합경매를 마카오에서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협력한 외국 경매사 CEO들 모두 경제 전문가였다. "신와옥션 사장은 도쿄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증권회사에 있다가 신와옥션으로 왔고 라라사티 사장은 영국에서 경영ㆍ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죠. 재정 분야에 대해 서로 말이 통해 AAW로 의기투합했습니다. 외국에서는 부동산ㆍ주식과 마찬가지로 그림이 중요한 투자자산으로 분류되기에 할 얘기도, 할 일도 많습니다." 최근에는 고가 미술품을 위주로 한 메이저 경매 외에 온라인 경매로 저변 확대를 꾀하고 있다. 동시에 시계ㆍ보석 같은 미술품 외의 품목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앞으로 미술시장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는 믿음을 가진 김 대표는 "돈을 많이 번 개인이 선택하는 마지막 취미가 바로 '컬렉션'이기 때문에 범세계적인 부(富)의 증가가 문화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고 내다본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미술시장 성장을 비롯해 2000년대 러시아와 인도, 최근의 중국 부호들의 '컬렉션 열풍'이 이 같은 전망을 입증해준다. 하지만 미술시장의 투기 양상은 늘 걱정하는 부분이다. "주식시장과 마찬가지로 시장이 급격히 커질 때는 투기거품이 끼게 마련이고 그럴 때는 꼭 개미들이 피해를 봅니다. 앞으로 미술시장이 커지겠지만 어려운 곳이니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일정량의 학습이 있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수익은 고사하고 백전백패할 수도 있습니다." 김 대표는 고객들에게는 공부를 당부하고 CEO로서 자신에게는 신뢰와 정직을 다짐했다. "세계적 미술품 경매지수인 '메이-모제스 아트인덱스'에 따르면 하강하던 미술품 가격이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상승국면에 접어들었고 최근의 각종 경매 결과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경제성장과 함께 미술시장의 주기가 짧아지는 추세라 이제 서서히 회복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미술시장과 경매회사가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은행을 그만두고 이곳으로 오지 못했겠죠." ●김순응 대표는 ▦1953년 충북 진천 ▦1978년 성균관대 경제학과 ▦1978년 한국투자금융 입사 ▦1992년 하나은행 종합기획부장 ▦1999년 하나은행 홍콩지점장 ▦2000년 하나은행 자금본부장 ▦2001년 서울옥션 대표이사 ▦2005년 K옥션 대표이사 ▦저서 '한 남자의 그림사랑' '돈이 되는 미술' '미술시장의 봄여름가을겨울'
"저평가 된 드로잉·큰 그림등 틈새 노려볼만"
■金대표의 미술시장 투자 조언 김순응 K옥션 대표를 만나는 사람들 열에 아홉은 "앞으로 미술시장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질문을 한다. 기실 그가 저서와 인터뷰로 말했던 예상들이 적중한, 믿을 만한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외국 사례를 기반으로 한 미술시장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예전에는 부를 가진 극소수 컬렉터들이 주도하는 '그들만의 리그'였지만 이제는 금융자본의 유입과 기관ㆍ아트펀드의 참여로 변화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는 "'메이-모제스 아트인덱스'를 비롯해 각종 지표를 보면 지난 2000년 이후로는 마치 주식시장처럼 미술품 가격 급락이 심하고 시장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2006~2007년 최대 호황기 이후 지난해까지 침체기를 겪었고 다시 회복기로 접어드는 상황임을 알아채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저평가된 분야에 접근하라고 권했다. 가령 비싼 유화보다 저렴하고 수준 있는 드로잉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드로잉 및 종이작품 테마 경매를 구상하고 있다. 미술품 자산을 확보해두려는 기업 투자가들에는 '큰 그림'이 유리하다. 김 대표는 "국내 미술시장이 개인 컬렉터 위주인 탓에 크기가 작고 예쁜 그림이 잘 되는데 이는 미술시장의 불균형"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의 경우 작은 작품의 가격에 비례해 큰 그림의 작품가가 매겨지지만 국내 시장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외국에서는 큰 그림이 선호되고 대작에서 작가의 진수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김 대표는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가치가 있는 '큰 그림 경매'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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