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3종세트 자격증 채용 때 사라진다

18개 금융 공기업 올해부터 적용
당국, 일반 금융사까지 확산 유도



금융계 취업을 희망하고 있는 대학생 A군은 펀드투자상담사 등 소위 금융 3종 세트의 자격증을 모두 땄다. 평소 금융 관련 동아리 활동을 해왔음에도 그가 이들 자격증 세 가지를 모두 취득하는 데 1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A군은 "이들 시험이 보통 4~6월에 걸쳐 있어 떨어질 경우 포기하거나 1년을 더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무래도 금융계 취직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는 만큼 대부분의 학생들이 준비를 하기 때문에 나 역시 자격증을 따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돈을 썼다"고 설명했다.

금융위원회가 A군처럼 금융계 취직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금융 자격증이나 높은 어학성적을 얻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비용과 시간을 소요하고 있다고 판단해 당장 올해 신규 채용하는 금융 공기업부터 자격증과 어학성적 요구하는 관행을 폐지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3일 '금융권 고용문화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금융 공공기관의 신규 채용 때 입사지원 서류상의 자격증과 어학점수 기재란을 원칙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신용보증기금 등 18개 금융 공공기관이 대상이다. 금융당국은 특히 자격증과 어학점수 기재란을 없애는 방침을 일반 금융회사에도 확산시킨다는 방침이어서 취업 시장에 만연한 소위 '스펙 쌓기' 풍토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김용범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펀드투자상담사 등 이른바 금융 3종 세트에만 연간 응시인원이 10만3,000명에 이르는 등 실제 업무역량과 연계성이 낮은 '취업용 자격증' 취득에 너무 많은 사회적 비용이 지불된다"며 "금융투자상품 판매, 권유 자격증이 금융회사 취업 요건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자격제도 개선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금융 관련 자격증은 62개에 이르고 구직자 한 사람의 평균 어학시험 응시비용도 38만원(2011년 기준)이나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격증을 소지한다고 해서 취직에 꼭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올해 신규 채용을 마친 금융기관 가운데 민간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는 비율은 3.2%에 그쳤다. 불필요하게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을 금융 3종 세트 등의 자격증 취득에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도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아무래도 유리한 측면은 있겠지만 그렇다고 자격증이 없다고 해서 취직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국장도 "취직하기 전에 충분한 지식을 숙지하는 것은 좋지만 자격증에 너무 많은 비용과 시간을 소요하는 것은 낭비일 수 있다"면서 "민간 금융회사의 경우 자체 채용절차가 있는 만큼 강제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구체적인 내용이나 성과에 대한 점검은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 금융회사로까지 확산하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개선안을 보면 자격증의 경우 일반 채용은 기재란을 없애고 기관 성격에 따라 예외적으로만 써넣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 기술보증기금은 한국사 자격증만, 신용보증기금은 회계사와 세무사 자격증만 기재할 수 있는 방식이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캠코(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등은 자격증 기재란을 완전 폐지한다.

어학성적 요구도 폐지되거나 최저기준 충족 여부만 확인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기업은행·캠코·주택금융공사는 완전 폐지하고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산업은행은 최저기준(토익 800점 이상 등) 충족 여부만 확인한다. 최저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어학실력 증빙서류는 합격 이후 제출하도록 해 점수의 높고 낮음이 채용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