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영업 창업과 삶의 질


추석을 앞두고 잘 아는 외식업소 사장님에게 명절인사 전화가 왔다. 당연히 명절동안 영업을 하는 줄 알고 고생하시겠다는 인사를 건냈더니 연휴동안 매장 문을 닫는단다. 직원들도 그렇고, 자신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 지역에서는 악착같이 경영을 하고 장인의식이 남다른 걸로 소문난 분이라 내심 놀랐다. 미국 유럽 등 해외 출장길에 현지 업소들이 모두 문을 닫을 시간, 교포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을 찾으면 시간에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교포들이 그렇듯이 우리나라 자영업자들도 ‘또순이’ 기질을 발휘하는 데는 세계 어느 나라 뒤지지 않을 정도다. 돈을 벌 수 있다면, 영업시간 요일 무관하게 운영하는 게 그간의 상례였다. 라이프 스타일이나 삶의 질은 항상 직장인이나 일반인들 이야기지 어디에도 소규모 자영업자와 관련해서 언급하는 경우는 없었다. 경쟁이 치열한 자영업 시장에서 살아남는 게 최고이고 생계형 창업자는 마치 돈버는 기계인 것처럼 비춰졌다. 하지만 최근들어 그러한 창업 풍속도에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수익못지않게 품격이나 삶의 질, 휴식의 조화를 생각해서 업종과 경영 형태를 정하는 창업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열 현상마저 보이는 카페 창업바람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품격을 중시하는 창업 트랜드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소위 ‘블루칩’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 역시 마찬가지다. 오너가 매장에 상주하지 않고 전문인력을 두고 운영하는 반부재형 사장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자영업 창업이 생계형과 투자형으로 뚜렷이 양분되는 모습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상류층들이 창업시장에 많이 뛰어드는 것은 부유한 베이비붐 세대의 창업이 늘고 있기도 하지만 자영업 업종이 현대화 고급화되면서 자영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부유층에게는 이름있는 커피숍 하나 운영하는 게 부의 상징처렴, 멋진 장신구 하나 지닌 것처럼 여겨지는게 요즘 세태이기도 하다. 청년 창업자들도 마음에 안드는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는 부모의 재력을 빌려 이름있는 브랜드 업소 사장이라는 이미지를 갖는 걸 더 선호하는 것같다. 여기에는 ‘찬란한 유산’이나 ‘파스타’ ‘커피프린스’같은 드라마의 영향도 있다. 어떤 형태로든 자영업자의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정말 삶의 질이 논의 되어야 할 대상은 생계형 창업자들이다. 맞벌이 부부의 육아를 거론할 때 항상 직장 여성에 대해서만 언급됐지 직장여성보다 여건이 훨씬 열악한 생계형 여성창업자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게 그간의 정서였다. 시대가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있는 만큼, 과열 경쟁속에 생존을 위한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수많은 소규모 사업자들의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은 꼭 필요하다. 생계형 창업자의 경우 중상류층 창업자처럼 품격과 여유를 동시에 누릴 수는 없더라도 ‘수익’외에 삶에 대한 만족감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업에서 고객에 대한 가치를 높이고 자신만의 경영철학을 만들고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경영하는 것은 화려한 인테리어 못지않게 중요한 품격이다. 고객은 물론이고 창업자 자신과 그 속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매장을 조금 더 청결하게 아름답게 꾸미려는 노력 역시 마찬가지이다. 영업장소는 단지 일하고 돈을 버는 곳만이 아니다. 소중한 삶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그 곳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기왕이면 더 우아하고 더 따뜻한 감성이 숨쉬는 공간이 될 필요가 있다. 명절에도 쉬지않고 영업을 해야 하는 수많은 소규모 사업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