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봄에 시집갈 딸아이 생각을 하면 잠이 안옵니다』
지난 2월 대기업에서 명예퇴직한 박모(53)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다.
일생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때에 경제력을 상실, 가장의 역할을 사실상 포기하면서 겪는 정신적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박씨는 대학생인 두아들과 직장에 다니는 딸을 두고 있다. 연간 등록금만 해도 1,000만원, 학원비와 용돈이 한달에 50만원이 넘게 들어간다. 박씨가 퇴직금으로 손에 쥔 돈은 1억5,000만원.
박씨는 『생활비는 퇴직금 이자로 그럭저럭 마련한다고 해도 학자금, 결혼비용 등 목돈이 들어가는 부분이 많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 가족의 일생에 걸친 소득과 지출내용을 보면 지출이 소득을 웃돌게 되는 시점이 바로 50대 초반. 자녀의 대학진학, 결혼 등으로 지출은 최고점에 이르는 반면 소득은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이다. 가장이 직장을 갖고 있어도 감당하기 벅찬데 실직을 하면 한 가정은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직장마다 구조조정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정리해고 대상에 오른 50대 가장이 괴로운 가을을 맞고 있다. 회사에서 내몰린 사람은 퇴직자대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언제 정리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6개월전 재택근무 발령을 받고 집에서 쉬고 있는 D그룹 박모(50)이사는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하면 입안이 바짝바짝 마른다.
그는 얼마전부터 사업을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친구들을 찾아다니지만 『IMF시대 창업은 꿈도 꾸지 말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그는 『아이들이 아직 고등학생이라 돈 쓸데는 많은데 벌어놓은 것은 없다』며 『20년동안 청춘을 바쳐온 직장생활이 너무 허무하게 끝났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어느 기업마다 구조조정하면서 인원감축비율을 정할 때 일반사원 20%를 정리하면 부장급이상은 50%를 줄이기 마련이다.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올들어 736개 상장사 임원가운데 51~55세가 1년새 무려 605명이 줄어들어 가장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이는 전체 임원감소수 1,192명의 50%를 차지한다.
가장의 경제력상실은 바로 가정파탄으로 이어지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버지의 전화」에 최근 하루평균 걸려오는 전화 20여통중에서 가장의 실직으로 겪는 고통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실직 자체보다 오히려 아내의 가출과 이혼요구로 고민하는 50대 가장이 크게 늘어난 점이 눈에 띈다.
아버지의 전화 정송(鄭松)소장은 『올초에는 실직에 따른 경제적 갈등을 호소하는 전화가 많았으나 하반기에 들어서는 실직이 몰고 온 가정파괴를 하소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가장의 실직과 함께 가정 자체가 깨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직장에서 내몰린 가장을 가족들이 6개월정도는 애정으로 감싸줬으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부부간 갈등이 심화,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을 섬기기 보다는 포기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즉 남편의 경제력이 약화함에 따라 「함께 사는 이유」를 상실한 것이다. 또 자녀들로 실직한 아버지를 아버지로 대하기 보다 애물단지로 간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IMF이후 50대이혼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드러나 가정파괴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에서 판결한 합의이혼건수가 올들어 35% 늘었으며 이 가운데 5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15%로 지난해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고 법원관계자는 전했다.【연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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