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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에서 일한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갑자기 본부장으로 승진하게 되면 어디에 줄 댄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오죽했으면 (해당 승진자가 근무 경험이) 있다고 얘기하라고 할 정도입니다."(KB국민은행 영업점 직원)
"지점장으로 퇴직하든 부지점장으로 퇴직하든 퇴직자에 대한 은퇴식이나 기념품 증정 등 그간의 노고에 감사함을 표하는 행사가 없습니다. 조직에 대한 애사심을 갖고 싶어도 생기지 않아요."(KB국민은행 A지점 여직원)
지난 18일 국민은행 일산 연수원에서 열린 '위기극복 대토론회'에서 일선 영업점 직원들은 그동안 마음에 품었던 생각을 스스럼없이 풀어냈다.
이날 모임은 임영록 KB금융 회장 등 임직원 61명이 참석한 위기극복 대토론회 자리였다. 도쿄지점 부당대출사건, 국민주택채권 위조·횡령사건, 카드정보 유출사태, kt ens 협력업체 대출사기사건 연루 등 지난해부터 KB금융에 잇따랐던 일련의 사건·사고들에 대한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됐다.
임 회장은 일절 말을 삼가고 임직원들의 고언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내가 코멘트하기 시작하면 직원들 간의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다"면서 "이번 끝장 토론을 KB금융그룹이 밑바닥부터 다시 치고 올라가기 위한 하나의 계기로 봐달라"며 대토론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일선 직원들, "부당인사 근절해달라"=토론회 진행 순서는 크게 △인사정책(채널갈등 포함) 문제 △단기성과주의 문제 △사고 예방 및 내부통제 문제 △자유토론 등으로 구성됐다. 각각의 토론은 2시간여씩 이뤄져 하루를 꼬박 넘긴 19일 오전1시께 마무리됐다.
일선 영업점 직원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보다 인사 문제였다. KB금융의 조직문화쇄신위원회가 3개월의 장고 끝에 내놓은 쇄신안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정기 인사 때 직급별로 순차적으로 하던 인사를 '원샷 인사'로 바꿔 줄서기 문화를 바로잡는다는 게 쇄신안의 핵심이지만 근원적인 대책과는 거리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갖춰진 시스템 이면에서 기생하는 부당인사를 근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영업점 직원은 "서울 도봉구, 노원구에서 과장 하던 사람이 수원으로 갑자기 발령이 나는 경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면서 "이런 인사만 발라내도 인사가 부당하다는 내부적인 얘기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는 "시스템적으로 잘 갖춰져 있다고는 하지만 개별 은행원의 일탈과 사고가 적발되면 대외적 후폭풍이 엄청나다. 사고를 저지르면 당사자뿐만 아니라 부당행위를 간과한 관리자 역시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에 참여한 국민은행의 한 임원은 "정치권에서 왔다는 말이 나온 한 임원은 '인사 담당과 문자 한 통도 하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밝힐 정도로 인사는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면서도 "기본적으로 인사에 관해서는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오늘의 토론을 통해 서로 간의 생각을 공유하고 고칠 수 있는 것은 추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달아오른 토론 열기를 이어가기 위해 임직원들은 준비된 도시락을 먹고 별다른 휴식 없이 곧장 토론에 다시 들어갔다.
◇성과지표 산정 합리화, 프리라이더 문제 해결 촉구=외부행사 일정으로 다소 늦게 도착한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성과지표(KPI) 산정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잡아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한 영업점 직원은 "개인 고과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하다. 개인 연수성적과 봉급이 딱히 연결되는 것 같지 않은데 이런 부분은 신한·우리은행 등에 비해 떨어진다"며 "KPI 고과를 본부장에게 제공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리라이더(무임승차) 문제도 지적됐다.
한 임원은 "2만명이 넘는 조직인 만큼 조직 내에 일은 적게 하면서도 돈은 많이 받아가는 프리라이더가 상당수 있다"면서 "무임승차자가 조직 분위기를 흐려 구성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만큼 프리라이더를 없애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팀장이 지점장보다 임금이 많아 차라리 승진을 안 하겠다는 솔직한 이야기도 나왔다. 부지점장의 경우 시간외수당을 받을 수 있어 지점장보다 30만~40만원 정도 월급을 더 받는다. 또 임금피크제의 경우 팀장은 56세에, 지점장은 55세에 들어간다. 국민은행의 한 임원은 "성과제도가 이러한데 누가 실적 압박을 받으며 지점장을 하고 싶겠느냐"며 "임금인상제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지금 아니면 고칠 수 없다. 배수의 진을 치고 정말 KB가 변했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주인의식을 갖고 기본으로 돌아가 이번 토론을 대전환의 계기로 삼자"고 마무리했다.
KB금융은 오는 24일 삼청공원에서 열릴 최고경영자(CEO)와의 대화에서도 이날 나온 쇄신책에 대해 더 심도 있는 토론을 나눌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