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지배세력에 좌절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일그러진 심성을 표현한 연극 ‘보이체크’가 12월 4일부터 18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 오른다. 보이체크는 24세로 요절한 독일 사실주의 극작가 게오르그 뷔히너의 미완성 희곡을 유리 부드소프가 각색, 연출해 새롭게 꾸민 작품이다. 인간의 일그러진 초상이 담긴 보이체크에는 19세기 독일의 사회적 모순은 물론 시대를 건너 뛰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하급 군인 보이체크는 애인 마리와의 사이에 난 아이를 양육하기위해 한 의사의 실험실에서 모르모트처럼 실험 대상이 된다. 의사는 보이체크를 실험동물로 취급하며 마음대로 침을 뱉거나 기침도 하지도 못하게 한다. 그의 모습은 자신의 의지를 상실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짜여진 일정에 맞춰 기계처럼 움직이는 현대인의 모습과 비슷하다. 원작은 억압과 피지배 구조를 토대로 사회성이 짙어 일반인들이 다가가기 힘들었지만 부드소프의 작품은 인간적 갈등과 진실에 초점을 맞춰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부드소프가 현대 연극을 ‘신체 연극의 시대’를 주장하는 만큼 이 작품은 인물의 성격에 따라 춤 동작도 달라지고 감정상태에 따라 각 인물들의 몸짓 변화가 정교해 신체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관전포인트는 무대에 있다. 30m폭의 깊은 토월 극장을 모두 사용해 관객과의 거리를 좁혔으며 30도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무대는 세상의 불안정성과 위태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서 있기도 불안한 경사면에 배우들은 강렬한 탱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축제를 즐긴다. 이는 중심조차 잡을 수 없는 세상에 살아가야 하는 고단한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연기파 배우 박지일이 보이체크역을 맡았으며, 명성황후, 갈매기 등에서 모습을 보여온 이혜진이 보이체크의 애인 마리역에 도전한다. 그 밖에도 장민호, 이남희, 남명렬, 윤주상 등 실력파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