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의 학업환경은 독특하다. 학생의 신분이면서 동시에 한 명의 연구자로서 다양한 프로젝트에 투입되기도 한다. 주는 대로 배우는 공부가 아니라 직접 적극적으로 찾아가며 배우는 공부가 중요한 곳이다. 그 안에서 치열한 노력을 통해 무려 18개나 되는 특허에 이름을 올린 학생이 있다. 올해 UST 전기 연구논문상을 수상한 한 김재우 학생의 이야기다.
김재우 학생의 첫 모습은 흔히 상상하는 연구원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슬림핏 바지와 단정한 카디건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모습. 본인의 주관과 개성을 잘 드러내는 외모였다. 출신 학부를 묻자 홍익대 전기전자공학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젊은이의 ‘핫플레이스’인 홍대 앞을 누비며 자연스럽게 몸에 밴 스타일일까. 외모 뿐 아니라 연구와 학업에 있어서도 적극적일 듯한 분위기가 묻어났다.
김재우 학생이 학부시절 많은 관심을 보인 곳은 반도체, 그중에서도 ‘전계방출 디스플레이(FED, field emission display)’ 분야다. FED는 박막형 디스플레이의 일종이다. 과거 TV 브라운관과 컴퓨터 모니터에 쓰였던 음극선관(CRT)과 유사한 자체발광형 디스플레이지만 LCD보다 두께가 얇고, CRT보다 화질이 우수해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낮은 공정비용과 전력사용량, 온도특성 등에서 고른 장점을 갖추고 있어요. 어두운 곳에 있는 물체의 윤곽이나 색상 구현력이 탁월해 TV, 컴퓨터는 물론 의료 및 산업용 디스플레이로서도 활용도가 높습니다. 삼성전자, 소니 등 대기업이 관련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어 이르면 수년 내 상용품을 만나볼 수 있을 겁니다.”
학부 졸업을 앞두고 김재우 학생은 FED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전자 방출원’을 만드는 연구를 계속하고 싶었다. 하지만 학부생의 신분으로 이 분야를 심도 있게 공부할 대학원을 찾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랬던 그는 어느 날 운명처럼 한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송윤호 박사의 기사였다.
“20년 넘게 FED 연구에 매진해온 송 박사님의 기사를 보면서 ‘저 분이라면 제대로 배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그렇게 송 박사님의 문하에 들어갈 방법을 찾다가 UST를 알게 됐습니다.”
일반적인 이공계 대학원들과 달리 정부출연연구소라는 연구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공부하는 UST의 시스템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선뜻 진학을 결심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출연연과의 협업 경험이 부족했던 터러 ETRI에서 연구자들과 함께 실전 연구를 해야 하는 UST 학업시스템이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담감은 FED 연구에 대한 목마름을 이기지 못했고, 결국 ETRI 캠퍼스 입학을 결정했다. 그가 속한 차세대소자공학 전공은 IT-융합부품, 신소재, 신기능성 소자 분야의 기술개발을 주도할 인재 양성을 목표로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연구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김재우 학생이 참여 중인 탄소나노튜브 기반 전계방출 전자원을 비롯해 그래핀, 박막 태양전지, 투명전자소자, 기능성 신소자 등의 신생 융합기술들을 일반 대학원에선 만져보지도 못했을 특수장비를 이용해 연구 중이다.
6년간의 석·박사 통합과정을 수료하고 내년 2월 졸업을 앞둔 지금, 김재우 학생은 UST를 만나게 된 것을 ‘천행’으로 여기고 있다.
“UST와 일반 대학원의 가장 큰 차이는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부분들, 특히 일선 연구자의 노하우를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교수님들도 제자들에 대한 애정 때문에 자신의 노하우를 독점하기 보다는 하나라도 더 전수해주기 위해 노력하십니다.”
특히 그는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전문가와 첨단 장비들이 넘쳐난다는 게 UST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메리트라고 강조한다.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열의만 있으면 어떤 분야라도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동료라는 동질감 속에서 지도교수님과 허물없이 연구와 인생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연구뿐만 아니라 인생을 헤쳐 나가는 지혜까지도 함께 배울 수 있었습니다.”
땀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뚜렷한 목표와 넘치는 열정으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는 동안 김재우 학생은 학문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18개나 되는 특허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이제는 학부시절부터 이어온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스스로 날갯짓을 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고민이 적지 않다.
“졸업 후에는 출연연이든 기업연구소든 꾸준히 제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주도적으로 자신의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가장 좋겠어요. 제가 개발한 기술이 제품으로 만들어져 인류의 삶에 도움을 주는 것을 보는 것이 연구자로서의 꿈이거든요. 그러려면 10년, 20년 이상 주변의 들썩임에 관계없이 한 우물을 팔 수 있는 연구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과학자로서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둥글둥글 주변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김재우 학생. UST와의 만남은 그에게 또 다른 특별한 인연도 만들어줬다. 대전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결혼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2세가 태어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주변에서 행복한 부부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요. 우리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어 결혼에 골인한 사람들도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