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연구소 시사진단] 최근 경제불안 진단과 정책대응

한미간 협력을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로운 해결과 기업ㆍ채권단의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시장원리에 따른 성숙한 구조조정이 우리 경제의 최대 과제로 손꼽혔다. 서울경제신문과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22일 공동주최한 시사진단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경제의 어려움이 단순히 최근에 발생한 악재 때문이 아니라 노사문제 등 여러 복합적 요소로 비롯됐다고 의견을 모았다. 외환위기처럼 우리경제가 미처 떨쳐버리지 못한 과거 부실과 잘못된 관행들이 축적돼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분식회계와 같은 우리경제의 고질병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아닌 은행과 기업의 주도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며 노사관계에서도 글로벌스탠더드가 도입돼야 한다는 견해가 제시됐다. ▲정희수 서울경제연구소장=우리나라 경제가 북핵 문제, SK글로벌 사태 등 여러가지 경제불안 요소들에 둘러싸고 있다. 국내외 연구기관들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잇따라 낮추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여러 위기요인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무엇이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가. ▲이덕훈 우리은행장=금융권에서는 가계부실 우려와 SK글로벌 문제를 가장 큰 위협 요소로 꼽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들은 그냥 어느 하루 아침에 불거진 문제가 아니다. 과거의 부실이 쌓이고 쌓여 오늘에서야 드러난 것이다. 가계부실 문제는 지난 2년간 일어난 대출 급증과 관계가 있다. 최근 카드사들이 겪고 있는 고통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대출이 급증했지만 이를 관리하고 앞으로 생길 문제를 미리 예견하지 못하고 대비를 소홀히 한 것이 문제를 키워온 셈이다. SK글로벌 문제도 경제의 큰 흐름에서 생각하면 미리 대비하지 못해 파장이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기업집단 형태를 통한 경제성장이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계에 부딪혔지만 종합상사는 여전히 과거의 관행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런 것들이 이번 SK글로벌 사태를 일으킨 것이다. 우리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은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다. 현재 금융권에서도 은행부문은 구조조정이 상당히 진척돼 있어 웬만한 위기에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구조조정이 미진하다고 지적받는 제2금융부문, 증권ㆍ보험 등은 최근 경기악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기업집단도 마찬가지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간의 차이는 위기시에 확연히 구분된다. 시장은 구조조정이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민첩하게 반응한다. 최근에 발생한 카드채가 편입된 수익증권의 환매사태는 시장의 우려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시장이 만족할 수 있는 구조조정 성과가 나타나야 최근의 위기상황이 다시 재발하지 않을 것이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기업인의 입장에서 최근의 경제불안은 금융부문의 불안 이외에도 생산부문의 비효율성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가 임금이다. 임금은 생산성이 늘어나는 범위에서 늘어나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존속할 수 있고 이윤을 남길 수 있다. 그렇지만 지난해의 경제성장률은 6%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인상률은 약 2배인 11%대에 이르렀다. 이처럼 높은 임금인상률을 가지고 우리 경제가 언제까지 성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국인 노동자의 임금이 이렇게 높다 보니 중소기업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수지가 안 맞아 공장을 해외로 내 보낸다. 기업인들도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이윤을 쌓아도 이 땅에 쌓아 우리 국민 모두가 잘살게 되는 것을 원한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기업인들을 떠날 수 밖에 없게 만들고 있다. 기업인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나라에 중국과 같은 노동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법과 원칙을 세워 거기에 맞는 임금정책과 노동정책을 펼쳐주는 것을 원한다. 여기서 말하는 법과 원칙은 사용자나 노동자 일방에 치우치지 않은 가치 중립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 스스로 이런 가치 중립적인 제도를 만들기는 힘들다. 이때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이 바로 글로벌스탠다드다. 글로벌스탠다드에 맞는 노동정책과 임금정책이 펼쳐질 때 기업인들도 최근의 위기 탈출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수 있는 것이다. ▲오영교 KOTRA 사장=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여건을 보면 투자와 소비 모든 면에서 밝은 면이 없다. 물론 우리경제의 고질적 문제인 노사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럴 때 우리가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것은 해외 밖에 없다. 그렇지만 현재 해외부문도 그리 녹록하지 않다. 현재 해외부문에는 이라크전쟁과 북핵 문제,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라는 3개의 커다란 악재가 있다. 이라크 전쟁과 북핵 문제는 일반인들도 심각성을 깨닫고 있지만 사스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외국언론과 연구기관들은 사스가 아시아 경제성장률을 최소 0.6%포인트 이상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스에 대한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사스의 가장 큰 폐해는 비즈니스를 위한 기회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최근 스위스에서 열린 시계박람회에 아시아권에서는 우리나라만 참가할 수 있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스위스 정부에서 보건상의 이유를 들어 간접 거절했다. 이로 인해 이 박람회에 참가한 국내 업체들은 다른 아시아권 국가와 수출협상을 전혀 할 수 없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사스가 더 확산된다면 이 같은 사례는 급격히 증가할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4월초에 독일에서는 이미 전쟁보다 사스가 경제에 더 위협적 요소라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 아시아권에서 사스가 발생하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것은 우리에게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한 장점이 될 수 있다. 사스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만큼 사스를 막기 위한 보건대책도 더욱더 철저히 세워야 한다. 사스가 우리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도록 체계적인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김중수 KDI 원장=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긴박한 문제는 북핵문제라고 생각한다. 외국인들이 국내투자를 꺼리고 국가신용등급이 하향경고를 받는 등 현 경제의 근본원인이 바로 북핵 문제에 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북한의 핵개발 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의 이견, 이로 인한 투자자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변화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지난 50년간 이견이 없어 보이던 한국과 미국사이에 북한을 두고 이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이 보수적인 미국 투자자들을 움츠리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오는 5월 취임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다. 여기에 외국투자자들과 국내 기업인들의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이번 노 대통령의 방문이 해외 투자자들을 안정시킬 수 있는 중요한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의 한 부분은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현 정부가 말하는 `개혁`에 `기업`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과거 정권은 개혁을 해도 그 앞에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든가 `국제화`와 같은 해외투자자들을 유혹하고 국내기업인들의 심리를 안정시켜주는 슬로건을 꼭 넣었다. 그렇지만 현 정부는 이 같은 정책적 배려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준다. 개혁이라는 말은 많이 하지만 기업인들이 사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준다는 말에는 인색하다. 외국자본과 국내자본을 안정시킬 수 있는 정책적 배려가 아쉽다. ▲정 소장=이라크 전쟁이 끝났다. 우리경제의 불확실성이 하나 걷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기 종전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유가안정과 `전쟁특수`가 우리경제의 활력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정반대의 견해도 존재한다. ▲박 회장=배럴당 40달러를 넘어가는 듯 했던 유가가 다시 20달러대로 떨어졌다. 이 부분은 우리에게 아주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일부 언론이 보도하는 것과 같이 조기종전에 따른 `전쟁특수`는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나라는 이제 과거처럼 도로포장이나 병원건설과 같은 대규모 공사에서 더 이상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임금이 높을 뿐 아니라 이제 중동업체들도 그 정도는 할만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설업종이나 일부 소비재 업종이 엄청난 수혜를 볼 것이라는 전망은 경솔하다고 판단된다. 또 이미 미국업체들이 이 같은 사회간접자본 재건계획은 모두 나눠먹은 상태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수익성이 낮은 일부 하청건설 업무 뿐이다. 현재 우리가 해외진출에 있어서 수익을 남길 수 있는 부분은 플랜트(Plant) 수출이다. 즉 공장을 지어 기술과 함께 수출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라크는 지난 20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공장이 거의 없다. 다시 말해 플랜트 수출을 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은 환경인 것이다. 일부에서 기대하는 `전쟁특수`는 과장됐다고 생각된다. ▲오 사장=부분적으로 동감한다. 우리가 원하는 이라크 특수는 국가 재건 초기단계에는 거의 얻을 수 없을 것으로 본다. 미국의 기업들이 거의 모든 부분을 이미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틈이 거의 없다. 그렇지만 초기 복구를 넘어선 경제복구의 단계에 들어가면 우리가 일정부분 수혜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도 적은 규모지만 의료부대를 중심으로 파병을 했고 전세계에서 몇 안되는 전쟁지지 국가 중의 하나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전쟁지지 국가이고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미국에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과거 걸프전이 끝난 직후 중동 지역의 상품수요가 갑자기 26%나 늘어났다. 전쟁이 끝나고 초기 복구가 끝나면 일반 시장의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때 우리 업체들이 적극적인 마케팅을 바탕으로 시장참여를 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정 소장=화제를 국내로 돌려보자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이 국내경제의 가장 큰 현안으로 손꼽힌다. 앞서 이 행장이 지적했듯 SK글로벌 문제는 과거 묻혀있던 부실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현 경제상황에서 대기업 집단에 대해 집중적인 감사를 당장 벌릴 수도 없다. 똑 같은 일이 다른 곳에서 터질 수 있는 가능성이 상존하지만 손을 댈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업투명성은 앞으로 우리경제의 최대의 화두로 떠오를 것이다. 경제에 대한 파장을 최소화 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은 방법은 없나. ▲이 행장=SK글로벌 사태로 기업 투명성에 대한 요구는 더욱더 높아졌다. 특히 세계화된 자본아래에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공정성과 투명성이라는 두 가지 명제를 더욱 철저히 지켜야 한다. 기업의 투명성이라는 것은 상대방이 그 기업을 봤을 때 모든 재무구조와 거래내역을 정확하게 확인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배구조 문제나 회계상의 문제 등 모든 면에서 정보는 완벽하게 공개돼야 한다. 과거에는 정보공유에 대한 기업과 은행간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기업은 은행에게 모든 정보를 보여주지 않았고 이로 인해 은행은 기업에 대한 정확한 리스크 판별을 할 수 없었다. SK글로벌도 이 같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은행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가장 답답한 면이 이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무디스나 스탠다드앤푸어스와 같은 해외기관에게는 모든 정보를 공개하지만 정작 사업파트너인 국내은행에게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물론 최근에는 이런 것들이 많이 개선됐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 문제는 우리 기업들에게 상존하고 있다. 기업의 투명성만 담보될 수 있다면 은행과 기업이 힘을 합해 분식회계 같은 문제들을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얼마든지 차근차근 풀어나갈 수 있다. 과거에도 이런 사례는 있었다. 기업이 자신의 분식회계 사실을 시인하고 은행에 도움을 구한다면 은행은 종합적인 경영컨설팅을 한 후 최대한 도움을 주고 있다. 이 기간동안은 이 기업의 신용등급도 그대로 유지시켜 준다. 분식처리한 채무에 대해 장기적인 정리계획을 세우고 정상적인 자금흐름을 유지시킬 수 있다면 살릴 수 있는 기업들이 훨씬 많다. 분식회계를 통해 아직도 부실을 숨기고 있는 회사들이 분명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분식을 숨기고만 있을 수는 없다. 업체들도 이제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은행도 기업과 한 배를 탔다고 생각하면 된다. 은행은 기업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할 자세가 돼 있다. ▲박 회장=전적으로 공감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은행과 기업이 적극 협력하는 길밖에 없다. 과거 이런 부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많은 정책적 유도책을 실시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시장이 그만큼 성숙하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은행과의 호흡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은 산업의 혈맥이다. 은행과 협력해 과거 분식을 해결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믿는다. 외환위기이후 30대 그룹 가운데 17개 그룹이 떨어져 나갔다. 남아있는 13개 그릅이라고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단지 밝혀지지 않았을 뿐일 수도 있다. 큰 회사부터 먼저 해결해나가야 한다.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또 다른 경제위기 요인이 될 수 있다. ▲김 원장=다행스러운 점은 지난 외환위기 이후 은행과 기업들이 이 부분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쌓았다는 것이다. 박 회장도 지적했듯 정부가 주도하는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 이미 증명됐다. 시장원리에 따라 채권단에서 주도권을 잡고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힘을 합치면 분명히 슬기로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리=조의준기자 joyjun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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