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가계의 씀씀이가 짜졌다. 소비지출 증가율이 12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통계청이 발표한 1·4분기 도시근로자 가구의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가계씀씀이에서 거품이 빠지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올들어 지난 1분기중 도시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백29만원이다. 전년 같은 기간의 1백95만원에 비해 9.3%가 증가한 것으로 이는 93년 1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기간중 소비지출은 1백48만원으로 증가율이 5.2%에 그쳤다. 이 역시 지난 85년 1분기 이후 12년만의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지난해 상반기까지의 소비 증가율만해도 1분기는 14.7%에서 2분기에는 17.2%로 과소비 경향을 보였다. 3분기 들어서는 11.1%, 4분기에는 10.9%로 다소 둔화되던 것이 올들어서는 아예 지난해 전분기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도시근로자 가구의 소비지출 증가율이 이처럼 뚝 떨어진 것은 알뜰소비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서 소득증가가 따르지 못하자 허리띠 졸라매기로 대처한 탓이다. 지출을 줄일 수 있는 항목인 식료품비·외식비·개인 교통비·각종 회비 및 교제비 등이 큰 폭으로 감소세를 보인 것이 이를 반증한다.
근검·절약의 생활은 원래 우리 민족 고유의 미덕이다. 그런데 어느틈엔가 소비가 미덕인 사회가 돼버렸으며 호화·사치가 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자가용을 굴리고 새로 입주한 멀쩡한 아파트를 뜯어내 초고가 외제품으로 개조를 하는 것이 요즘의 세태다. 지금도 보석관광, 도박관광, 보신관광 등으로 흥청망청 외화를 낭비하면서 나라망신을 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이같은 관점에서 이번 불황은 또 한번의 도약을 위한 각성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난날을 반추해 보면서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하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다행히 일본의 엔고 등으로 경기가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다. 경기가 좋아졌다고 해서 또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절약하는 자세로 저축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예금이 산업자금화, 제조업을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일본이 초엔고시대에도 좌초하지 않고 헤쳐 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국민들의 근검·절약 정신에 기인한다. 일본의 샐러리맨들은 월급의 절반을 저축하는 습관이 몸에 배있다. 그래서 가구당 저축액은 평균 1천만엔(한화 약 7천8백만원)으로 세계에서 으뜸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도 일본사람들에게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가계소비에서 거품을 더 빼고 생활도 짜임새 있게 꾸려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