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 법이나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기보다 편법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아직 남아있고, 특히 사회 지도층에 대한 불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달 2∼6일 전국 성인남녀 8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6명 꼴(56.7%)로 자신의 엄격한 규정 준수가 타인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정상적인 절차나 법보다 편법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매우 동의한다’와 ‘동의하는 편이다’라는 답변이 85.7%나 됐다.
‘왜 편법에 의존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법규정이 모호하고 단속 기준도 오락가락하므로’라는 응답이 25.7%로 가장 많았다.
이어 ‘편법을 통하면 문제가 빠르고 쉽게 해결되므로’(23.0%), ‘처벌이 너무 약해서’(19.7%), ‘결과만 좋으면 사소한 편법은 용서되는 분위기 때문에’(16.8%), ‘나만 규정을 지키면 손해이니까’(14.8%) 등의 순이었다.
즉, 편법이 법·질서보다 편하다는 의식이 국민 의식 속에 적잖이 퍼져있는 것이다.
장후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엄격한 규정 준수가 타인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은 법·질서 준수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법·질서가 사회지도층과 일반 국민에게 고무줄처럼 달리 적용돼 온 문화가 법·질서 준수 의식을 해쳤다고 지적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민주 사회에서 법과 질서는 공통의 룰(rule)인데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권력과 돈을 가지면 어떤 잘못을 해도 용서되는 경향이 있었다”며 “권력층과 재벌의 불법행위를 단죄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법을 지키라고 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한국의 소위 ‘권력층’의 부패 정도는 선진국에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평가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 1995∼2010년 연평균 한국의 부패지수는 4.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평균의 7.0에 크게 낮았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이번 조사에서 한국 국민은 우리 사회가 성공만 하면 과정 상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용서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정직하지 않은 사람도 성공하면 사회지도층으로 용인되는 분위기’라는 의견에 84.0%가 공감했다.
이런 분위기는 국민들의 사회 지도층에 대한 인식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사회지도층을 얼마나 신뢰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매우 신뢰한다’와 ‘신뢰하는 편이다’라는 응답이 23.5%로, 타인(일반 국민)을 신뢰한다는 대답 76.4%과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안진걸 처장은 “한국의 법·질서가 바로 서려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국민 통념이 깨져야 한다”고 말했다.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에게 엄격한 법 잣대를 들이대고 불법행위를 단죄할 수 있어야 법·질서를 확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이번 조사에서 국회·입법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18.0%에 불과했다.
법원·사법시스템(52.1%), 정부·행정시스템(46.7%)보다 낮은 것은 물론 시민단체(47.4%)나 대기업(42.3%)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러한 정치 불신과 부족한 법·질서 의식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 결과 한국이 엄격한 법·질서를 통해 국가 청렴도를 OECD 국가 평균 수준으로 높이면 연평균 1인당 명목 GDP는 138.5달러, 경제성장률은 명목 기준으로 연평균 0.65%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추정됐다.
/디지털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