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매트릭스' 속 세상 머지않았다

■ 사이퍼펑크
줄리언 어산지 외 3명 지음, 열린책들 펴냄


사이버펑크가 아니라 '사이퍼펑크(Cypherpunk)'다. 암호(cipher)라는 단어에, 저항을 뜻하는 펑크(punk)를 붙여 만든 합성어인 사이퍼펑크는 수신자만이 알 수 있는 암호로 정보를 보내는 사람, 나아가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암호기술을 활용하는 사람을 말한다. 2006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됐을 정도로, 이미 우리 삶을 파고 든 단어다.

사이퍼펑크 운동의 핵심인물로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가 있다. 어산지는 2010년 미국 국무부의 외교 전문 25만여 건 등 엄청난 1급 기밀을 인터넷에 공개해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강대국 정보기관의 추적을 피해 영국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 숨어 지낸다.

어산지는 최근 번역 출간된 이 책에서 "국가와 기업이 대규모 감시와 검열을 벌이고 있는 현재의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면 세계 문명은 '포스트모던 감시 디스토피아'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의사소통은 감시당하고, 영구적인 기록으로 남고, 끝까지 추적당할 것이며, 사람들은 모든 상호 관계 속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식별당하며 이러한 새로운 시스템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게 될" 세상이, 마치 영화 '매트릭스' 속의 현실 같은 세상이 머지않았다는 게 그의 경고다.

책은 어산지가 디지털 인권 관련 전문가들과 나눈 2012년 6월의 토론 동영상을 토대로 쓰였다. 인터넷 검열을 피하기 위한 온라인 익명 시스템 '토르 프로젝트'의 개발자 제이컵 아펠바움, '유럽 디지털권리(EDRI)' 공동 설립자 앤디 뮐러마군, 유럽 시민 권리단체 '라 카드라튀르 뒤 네트'의 공동 설립자 제레미 지메르망이 토론에 참여했다.

인터넷이 더 큰 자유와 가능성을 열어줬으나 이를 통한 대규모 감시와 통제도 함께 진행 중이라는 게 저자들의 엄중한 경고다. "인터넷은 위험한 감시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강력한 도구"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그래서 책은 '암호기술'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사람들 사이의 암호화 경로들이 맞물리면 국가의 강제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1984' 속 빅브라더가 현실화된 듯하다. 게다가 최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잦은데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정보보호를 위한 보안문제를 지적할 정도로 우리 상황이 심각한 터라 더욱 눈길이 가는 책이다.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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