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프린터, 소량생산 적합한 책상위 공장"

■ '창조경제 포럼' 기조연설 앤더슨 3D로보틱스 CEO
범죄 악용 우려 크다고 물건 자체 규제하면 안돼
개방형 혁신 이어지려면 아이들 직접 경험할 수 있게
도서관·학교 구입 지원을

3차원(3D) 프린터의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3D 프린터는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법한 상황들을 현실로 이끌어내고 있다.

지난 10일 미국 텍사스의 음악축제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에서는 3D 프린터 오레오 자판기가 등장했다. 이 3D 프린터는 단순히 쿠키를 만드는 것을 넘어 소비자가 12가지에 이르는 잼과 쿠키의 맛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의료계에서의 사용도 활발하다. 영국에서는 최근 3D 프린터를 이용한 안면재건술에 성공했으며 미국에서도 3D 프린터를 이용해 수술 전에 심장 모형을 만드는 등의 방법을 이용, 수술에 성공했다. 국내에서도 3D 프린터로 만든 내시경 수술기구를 이용해 종양 제거에 성공하기도 했다. 심지어 네덜란드에서는 3D 프린터를 이용해 높이 6m 상당의 빌딩을 짓고 있는 등 3D 프린터는 하루하루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5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 경찰청은 직접 3D 프린터를 이용한 권총 모델을 제작한 후 격발 테스트를 실시했다. 첫 번째 격발 실험에서 총알은 17㎝ 두께의 플라스틱 수지를 파고들어 구멍을 냈지만 두 번째 실험에서는 권총 자체가 산산조각이 났다. 3D 프린터로 제작한 총은 맞는 사람은 물론 쏘는 사람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미국의 한 대학생도 3D 프린터를 이용해 소총을 제작한 뒤 유튜브를 통해 실제 사격 장면을 공개하는 등 3D 프린터가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자 미국 정부는 권총 도안의 오리지널 캐드 파일을 압수하기도 했다.

이처럼 3D 프린터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크리스 앤더슨 3D로보틱스 최고경영자(CEO)는 "컴퓨터를 바이러스를 유포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3D 프린터도 악용될 소지가 있는 것일 뿐"이라며 "사용법을 규제해야지 물건 자체를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19일 미래창조과학부 주관으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창조경제 글로벌 포럼 2014' 참석 차 한국을 찾은 앤더슨 CEO는 유명한 3D 프린터 예찬론자다. 이날 포럼의 기조연설자로 나선 그는 "3D 프린터는 책상 위의 공장(desktop factory)"이라고 정의했다. 실제로 그는 저서 '메이커스'에서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상상한 물건을 컴퓨터로 그린 다음에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다. 컴퓨터로 디자인한 다음에 버튼만 누르면 물건이 나타난다"며 "귀신 같은 기술인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공상과학소설 같은 일을 앞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3D 프린터에 무조건적인 찬사만을 보내지는 않는다. 앤더슨 CEO는 "3D 프린터를 비롯한 디지털 생산기술이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며 "공장에서 기계로 대량 생산하는 전통적 제조방식의 경우 추가 생산할 때마다 비용이 낮아지지만 디지털 생산기술을 사용하면 생산량이 늘어도 비용은 낮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날 강연 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는 "2차원(2D) 프린터를 가지고 있어도 책은 인쇄소에서 만들고 프린터는 문서용으로만 사용하듯이 3D 프린터도 대량 생산과는 걸맞지 않는다"며 "그보다는 시제품이나 소량의 물품 등으로 사용되는 것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그는 3D 프린터가 개방형 혁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디지털 환경에 노출시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앤더슨 CEO는 "전국의 모든 학교 컴퓨터실에 3D 프린터를 구비해 아이들이 디지털 디자인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언젠가는 가정에서도 디지털 디자인을 할 수 있겠지만 그 전까지는 도서관이나 대학 등이 재정을 지원해 학생들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미국의 경우 전교생이 의무적으로 일 년에 한 시간 동안 프로그래밍에 관한 기초교육을 받는다"며 "이를 통해 0.1% 정도는 프로그래밍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지도 않겠느냐"고 말했다.

앤더슨 CEO는 '매출 80%는 상위 20%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기존의 파레토 법칙에 배치되는 개념인 롱테일 법칙과 프리코노믹스 이론의 창시자다. 정보기술(IT) 잡지인 와이어드에서 편집장으로, 국제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에서 편집자로 활동했으며 '메이커스'와 '롱테일 경제학' 'FREE' 등 베스트셀러를 출간하기도 했다. 지난 2009년 언론계를 떠난 뒤 산업·개인용 무인 비행기를 만드는 3D로보틱스를 창업해 CEO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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